나(我)/빛 바랜 일기
새벽 잠에서 깨어
자광
2009. 11. 7. 18:00
잠들지 못하는 새벽이었지만 또 나름의 새벽이라는 운치가 있어 좋다, 공기도 새로운 것 같고 하늘도 새로운 것 것도 모든 것이 새롭게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아 나름의 느낌은 좋다. 하지만 코끝은 맹하니 하얀 입김이 안경에 서리가 된다. 이젠 몸도 예전 같지 않다.
한살 또 한살 나이를 먹으며 결국은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에게 어떤 열정이 있어 지금껏 이렇게 걸어 왔는지 뒤돌아보려고 해도 흔적이 없다. 아니 보이질 않는다. 한 발자국 내디딤으로 그 뒤를 마치 빗자루로 쓸어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지워 버린다.
어쩌면 일부러 그런지도 모른다. 나의 지금이 미치도록 초라해 그 초라함을 자꾸 지우려 하는지도 모른다. 하나, 둘 그렇게 지우다 보니 지금처럼 기억할 것도 없는지도 모른다.
발끝으로 차가움이 밀려온다. 제법 두꺼운 양말을 신었는데도 겨울 내내 뜨거운 기운 한번 받아보지 못한 방바닥에 따스함을 기대하는 내가 어리석지…….그러고 보니 겨우내 보일러 한번 틀지 않고 지내고 있다. 기름 값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불 속은 따뜻하기 때문이다…….등 따뜻하고 그저 머리 부분만 약간 차가울 뿐 그럭저럭 견딜 만 했던 것 같다.
하긴 겨우내 바깥에서 지내시는 노숙자분들도 있는데. 난 그것이 비하면 행복하다. 그나마 따뜻한 이불속에서 찬바람을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보일러는 그렇게 장식물처럼 한 번도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2009년 2월 2일 06시21분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