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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我)/일상

이별과 더불어 산다는 것

by 자광 2009. 7. 18.

산다는 것이 참 우습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살아 있으니 그냥 살아간다.
무언가에 의미를 두고 살아야 하는데
그 의미를 둘 만 한 것들이 하나둘 내 곁을 떠나간다.
그동안 맺어온 소중한 인연들이 차례로 떠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것인데
 
처음 이별은 내 나이 5살 때의 어머니와의 이별이다.
아버지와 큰 싸움을 하고 나서 내가 기억하기로
아버지와의 다툼 끝에 어머니는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는 잠든 덧이 누워 있는 채로
집으로 돌아와 하얀 꽃상여를 타고 떠나 셌다.
 
그날 아마 비가 조금씩 왔다.
우리 집은 가난하여 화려한 꽃상여가 아닌 동네에서 함께 사용하는 하얀 꽃상여
가 집 앞에 와서 어머니를 싣고 떠나가셨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고 첫 번째 가슴 아픈 이별이었지만
나는 그 이별을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2살짜리 여동생을 등에 업고 떡 달라고 울 뿐이었다.
그렇게 떠난 어머니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아무리 불러 보고 싶어도
엄마. 어머니라는 소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는 어색한 단어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별 하지만 철이 들고 또 만난 아버지와의 이별 도 나에겐
참 허무하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돌아 가실 때 나는 국내에 없었다. 그때 아마도
대만에 머물러 있었는데 가족들과 연락이 되질 않아 나는 모르고 그냥 넘어 갔다가
귀국하여 집에 들렀을 땐 이미 아버지는 영정속의 사진으로 남아 계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머리가 하얗게 새어 당신의 손자를 위해 웃어 주 던
그 모습뿐이다. 당신의 손자이지만 손자의 재롱도 미안해하시던 아버지
자식들로 모르게 가지고 있던 재산을 함께 살고 계시던 새어머니라는 분에게
이용당해 새어머니의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당신의 친 자식들에게는
가난만 물려주고는 떠나셨다. 결국 남은 것은 시골의 작은 집 한 채와
아버지의 고향마을 선 산 뿐이었고 그 마저 새어머니라는 여자의
장난질이 시작 되기 전에 이리저리 뛰어 다닌 결과
큰 형님 명의로 바꾸어 겨우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이별 또한 허무하게 맞이해야 했다.


또 다시 다가온 이별은 내겐 부모 같았던 큰 형님과의 이별이다.
얼마 전 교통사고로 팔 한쪽을 잃고 나머지 한쪽 팔을 부여잡고 살려고
아등바등 이던 큰 형님은 내가 방문하고 그 다음날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그동안 제대로 먹지를 못해 허기진 가운데
서럽게 참으로 서럽게 돌아가셨다.
 
시신을 염하는 날 마지막으로 보라는 말에 형님의 얼굴을 보았다.
잠든 것처럼 편안하게 하얀 새 옷 한 벌 얻어 입고 그렇게 떠나셨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어쩜 큰 형님에게는 더 편안한 인연을 찾아
떠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난 결코 울음이 나오질 않았다.
억지로 참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장장으로 떠나든 날 나를 영안실을 지키지 못하고
발인 하루 전에 영안실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누나의 술주정 때문이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누나가
술을 마시고 밤새 지나간 과거를 부여잡고 오빠가 어떻게 했느니
하며 주정을 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형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답답했다. 지나온 과거를 부여잡고 자꾸 되뇌는 누나의 모습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매여
아픔을 되새기는 모습 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많은 후회가 나를 찾아왔다.
그렇지만 나는 잊으려 한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형님네 가정은 흩어지게 되고 나는 조카한명 책임지지 못하는
참으로 무능한 신세가 되었다.
큰 조카는 정신지체장애로  어느  장애인 시설로 보내지고
둘째 막내 조카는 지금  보육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조카들의 곰 세 마리가 하며 노래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큰 형님을 생각하면 반드시 옆에서 돌 봐 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지금의 내가 참 나쁘다.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나는 그러고 보니 세상에 지은 죄가 참 크다.
그리고 바로 내 손 위에 형님이 아직도 가까운 곳에 살아 있는데
나는 또 이런 저런 미움들로 인해 찾지를 않고 있다.
몇 번 전화가 왔는데도 형님의 애끓는 전화에도
내가 냉정해서 인지 아직도 어디에 살고 있는지
이사 간 뒤로 찾지를 않는다. 내가 정말 나쁜 놈이다.
 
한치 앞도 모르면서 이렇게 상대의 가슴에 아픔을 주고 있는 내가
밉다. 그냥 이해하면 되는데 피를 나눈 형제인데도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순간이 기회인데도 나는 항상 그 기회를 놓치고 나서
후회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찰나에 살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찰나를 미룬다. 자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