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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붓다/차나한잔

스승과 제자

by 자광 2009. 11. 11.
어느 마을에 스승과 제자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제자가 평소에 궁금해 하던 것들을 스승께 여쭈어 보았답니다.

제자: 스승님, 사람이 죽은 후에는 지옥이 있고 극락이 있는지요?
스승: 있어도 좋고 없어도 상관없다.

제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스승: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니라.

제자: 아니 스승님,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니요?
스승: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도 있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자: 그렇다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니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나쁜 일은 하지 않아야 되겠군요.
스승: 그렇다.

제자: 그럼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없을 수도 있으니
좋은 일을  할 필요도 없고 나쁜 일을 많이 해도 괜찮겠군요?
스승: 그렇지 않다.

제자: 그렇지 않다니요? 말씀대로라면 그렇게 되는 것 아닌지요?

스승: 왜 그렇지 않느냐 하면 바로 마음 때문이다.
즉 있다고 믿는 사람이, 좋은 일은 하지 않고 나쁜 일만 하면서
어찌 마음이 편하겠느냐?
그 마음이 바로 지옥이나 다름없는 것인데.
또 보상(극락)을 바라는 선행이라면 이미 그것은 선행이 아니다.

제자: 그러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스승: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착한 일은 하지도 않고  악한 일만 하게 되면
심성이 거칠어지고 사나워져서 지옥과 다름없고,
또한 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사게 되어 결국 자신이나
그 자식들이 앙갚음을 당하게 되니 그 또한 지옥이 아니겠느냐.

제자: 그래서 지옥이나 극락은 생전이나 사후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이군요?

스승: 그렇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그것은
인간의 범주나 한계를 벗어난 문제이다.
즉 인간이 이러쿵저러쿵 참견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신의 문제도 아니다.

제자: 스승님, 신은 존재하는지요?
스승: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것이다.

제자: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스승: 있다고 믿는 사람은 느낄 수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느끼지도, 생각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계기가 있으면 믿지 않다가도 믿게 되고,
또 믿다가도 믿지 않게 되니
그 또한 사람마다의 마음 때문이 아니겠느냐.

제자: 마음 때문이라 하시면?

스승: 마음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주를 품을 수도 있고
티끌 속에 숨을 수도 있으며, 우주의 시작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그 끝 또한 상상해 낼 수도 있기 때문이지.
마음을 비워 깨달음을 얻으면 알 수도 있을 것이네.

제자: 지옥이나 극락, 신 또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요?

스승: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주의 법칙 속에서 인간은
그저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면 되겠지.

제자: 태어나서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어 버리기만 한다면
의미 없는 삶이지 않습니까?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다가 죽어가긴 하지만요.

스승: 네 말이 옳다. 사람이 생로병사의 과정만 거친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느냐?
남을 배려하고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한편, 자신을 닦으며
살아야 의미도 있고 보람도 있는 인생이라 할 수 있겠지.
마음을 비워서 진리마저 깨닫고 죽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고.

제자: 성주괴공이 우주의 법칙이라면
지구의 종말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스승: 그 또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지금과 같이 개인이나 단체나 민족이나
국가가 이기주의에 매달리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인간세상의 끝이 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피곤하구나. 이제 그만하자꾸나.

제자: 네, 스승님의 가르침 대단히 고맙습니다.
스승: 너도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일 아니냐.

주 : 공(空)에서 무언가가 생겨나서 존재하다가
파괴되어 다시 사라지는 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무상(無常)과도 일맥상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