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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我)/따다부따

세상돌아가는 대로

by 자광 2011. 8. 6.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요즘 바쁜 사람들이 참 많아 졌다.
그런데도 나 혼자 이렇게 유유자적한 이유를 모르겠다.
요 며칠 사람들의 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저 쓴웃음 밖에 나오질 않는다.

무엇이 옭고 그런가. 모르겠다.
내 맘에 들면 옭고 그렇지 않으면 그러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꼭 근방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바쁘게 돌아간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한치 앞도 모르면서 마치 자신만이 다 알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마구 말하고 마구 뱉어 낸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진실과 거짓의 구분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다.

답답하다 못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래서 혼자 유유자적해보는 것인지 모른다.
사람은 보통 말을 할 때 어떤 문제에서 '내 평생'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왜 하필 '내 평생'일까?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공통으로 사용하는 말이 바로 '내 평생'이다.

즉 열 살 먹은 아이는 그렇게 살아온 지난 10년간으로부터
지금까지가 '내 평생'일 것이고 50 먹은 사람은
지난 50년간의 세월이 지금 말하는 '내 평생'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내 평생'이라는 말을 그렇게 자주 사용할까?
그러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다. 언제 죽을 것인지 아느냐고? 아마 모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내 평생'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즉 죽는 순간까지가 바로 '한평생이기 때문이니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내 평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 또한 없다 죽음은 너무나 당연히
오고 또 그렇게 언제나 태어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우주는 우리 인간들이 다 멸족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아니 그 흔적의 존재조차 모를 것이다. 수많은

별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다.
물론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하여 살 것이다 누가 그런다.
나는 왜 태어났는지 알고 싶다고.
태어난 이유를 알고 싶다고. 누군가 내가 물었다.

왜 죽느냐고 내가 대답을 한다.
그럼 살지를 말라고 살지를 않으면 죽을 일이 없다.
누구나 살아있기 때문에 죽는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런데 그렇게 수많은 다툼과 분쟁으로 일관되어 살아간다.
나와 조금만 다른 의견이 나오면 바로 돌아서 등에 비수를 꼽는다.
그리고 소모적은 싸움을 시작한다. 우리들의 생은 실로 시간이 길지 않다.

그 길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많은 소모와 분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피곤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분쟁에 휩쓸려 있으면서
자신이 지금 분쟁에 휩쓸려 있는지를 자신은 모른다는 것이다.

바다에서는 바다를 볼 수가 없다.
한발 물러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자신이 행여 잘못하고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어떤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바다 속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삶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삶을 탓하기보다는 한번쯤 자신의 삶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용기도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성장이다.

요즈음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렬의 일들을 지켜보면서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이 글을 쓴다. 내부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자꾸 서로 가슴에 칼을 겨누고 싸운다.

그것이 가슴이 아프다. 이제 오히려 차분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소모적인 언쟁을 해야 하며 또 그 소모적인 언쟁을 하도록
획책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내부에서는 모른다.
벗어나 보아야 한다. 하필 이때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내부를 흔들어 버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2006-05-15 오후 2:26:19 작성한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