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하붓다/허튼소리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by 자광 2009. 1. 24.


우리들은 정말 수많은 형태의 사람들을 본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제각각의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 중 나도 있고 너도 있다.
그런데 가끔 나는 그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선 내가 세상에 나올 때 난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남자로 나올지도 알지 못했다.
더 중요한 것은 난 내 삶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살아간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아마도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
산다는 것의 종점은 죽음이다. 하지만 역으로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다.
어떤 종교에서는 죽음을 마지막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기 싫다고 한다.
그리고 죽음하면 어둡고 침울하게 생각한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돌아가셨다.
그 분은 불교신자 이었지만 그 자녀들은 종교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다툼은 일지 않았다.
돌아가신 분의 종교에 따르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유골을 뿌리자고 하였다.
난 당분간은 납골당에 모시자고 이야기 하였다.

물론 흔적도 남김없이 지우고 감이 좋겠지만
남은 자들의 가슴엔 그 흔적이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간. 은 모셔 좋고 그다음에 결정해도 된다.

얼마 전 강의 때 누군가의 질문이 이것이다.
죽음을 벗어나는 방법이 있냐는 물론 있다고 하였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 애초에 살지를 않음 된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소멸된다. 그것이 진리다.
이 세상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영원하지 못하는 것에 집착하여 욕심이 생긴다.

그리고 그 욕심을 이루지 못해 괴롭고.
그 괴로움으로 인해 번뇌하고 고민하고 또다시 업을 쌓는다.
그것을 모르는 것이 무명이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반야고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도 올수 있다.

또 죽을 수 있기에 또 다른 윤회도 가능하고
그것을 벗어남이 바로 해탈이다.
하지만 해탈하려는 마음마저 욕심이다.
인연이 다했을 때 떠남은 또 다른 인연의 시작일 뿐이다.
그것이 삶과 죽음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삶은 한조각의 구름이 일어남이고
죽음은 한조각의 먹구름이 사라짐이라 라고 이야기 한다.

제각각의 형태로 살고 있지만 똑같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제각각 살고 있지만 똑같이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그만큼 우주는  중생의 수만큼 무수하게도 많이 존재 한다.

그 우주의 주인은 각자 자신들이다.
내가 사라지면 우주도 사라진다.
내가 태어남으로 나의 우주도 태어 나는 것이다.
자 이제 어디로 가시는지 아십니까.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어디이신지.
자광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