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하붓다/허튼소리

스승님 등이 아파요

by 자광 2009. 1. 29.

바람이 서늘한 어느 가을날, 저녁, 동승 오공이 산책을 하다가 담벼락 아래에 의자하나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 절의 규율을 어기고 담을 넘은 것이 분명했다. 밤이 깊은 시각. 누군가 절을 넘어 들어 왔다. 그런데 그는 다름 아닌 스승처럼 모시고 있는 혜명스님 이었다.

혜명이 또다시 담을 넘어 밖으로 나간 저녁 동승은 의자를 한쪽으로 치우고 담 아래 엎드려 있었다. 이윽고 혜명이 돌아왔는데 발아래 물컹한 것이 밟혀 살펴보니 동승이 있을게 아닌가! "오공, 네가 왜 여기 있지?" 그러자 오공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스님. 등이 아파요" 그러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이후 혜명은 두 번 다시 담을 넘지 않았다. 나중에 혜명은 주지스님을 거쳐 일대종사가 되었다. 그는 평생 동승의 등을 잊을 수 없었다.

우리네 불자들은 어떤 일에 있어 상대가 잘못을 해도 그냥 입을 다물고 그 잘못을 모른 채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잘못을 지적이라도 할라치면 에이 불자가 왜 그렇게 나서라고 하며 오히려 그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못난 사람으로 본다.

과연 그럴까. 상대가 가령 나보다 상사이거나 어른일 때, 또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손아래 사람일 때, 어느 때이건 잘못에 대한 지적은 분명이 있어야 그 사람은 두 번 다시 그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불자의 할일이다.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잘못을 하지 않도록 하여 악업을 쌓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네 대다수의 불자들은 그저 참는 것을 인욕으로 안다. 막연히 참는 것과 인욕은 다르다. 상대의 잘못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데도 그 잘못을 계속 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이건 책임회피다. 잘못을 지적하되 그 방법을 달리 하여 동승처럼 현명한 지혜로 상대를 깨닫도록 한다면 이는 혜명스님의 평생 스승은 동승의 등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혜명스님은 일대종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동승이 이런 지혜를 발휘하지 않았다면 혜명의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불자라면 막연한 인욕보다는. 동승처럼 현명한 지혜를 발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