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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과 차안 흔히들 종교를 가지는 것이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신앙을 종교를 가지고 앙망하는 신으로부터 그들의 세상으로 가는 것이 구원이거나 극락왕생이거나 뭐 그런 식으로 지금보다 나은 세상으로 가는 것을 열망하고 그러기 위해 간절히 원한다. 이생에서는 비록 비천하고 남루하지만 다음 생에서는 구원받아 지금보다 나은 삶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내가 안을 주장하니까 바깥이 생기는 것이라고 내게서 안이라는 주장이 없다면 바깥이라는 개념도 없다. 내가 극락을 주장하니 지옥이 생기고 내가 이 세상을 주장하니 저세상 또한 생기는 것이다. 보살을 주장하니 중생이 생기고 부처를 주장하니 중생이 생긴다. 보살도, 부처도, 중생도 다 허상이다. 마음에서 생겨난 미련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 2018. 5. 7.
분별 지금 어디를 보는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앞이라고 주장하면 뒤가 생기고 뒤라고 주장하면 또 앞이 생긴다. 설령 깨달아 부처라고 해도 자신이 부처임을 주장하면 그 또한 가짜. 깨달았다고 해도 거짓말 깨닫지 않았다고 해도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해도 참이고 참이라고 하면 또 거짓이니 안이라고 할 수도 바깥이라고 할 수도 내가 살아있음을 주장하면 또 죽음이 생기니 삶과 죽음 또한 별반 다르지 않더라 어둠과 밝음은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따로 있는지. 하나를 주장하면 또 하나가 생기고 그래서 내 이르기를 그것을 분별이라고 한다. 그 분별이 자꾸 또 다른 망상을 만드니 그대 분별하지 말라 이렇게 분별 할 것도 없는데 없다고 주장하니 또 있음이 생기는 구나. 그래서 옛 스님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라고 하셨구나 2012.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