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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14

지수화풍 인드라망의 그물에 엮인 주제에 벗어나려 했다. 지수화풍 地水火風 이중 어느 하나 인연 다해 떠난다면 결국 허물어지는 지금의 이 나라는 존재 애초에 我 라고 주장 할 만 한것이 없는데 산다 한다 2023. 8. 25.
문수보살 230808 문수보살 #문수보살 #보살도 #불화 #Buddha #내그림 #취미 #폰그림 #폰스케치 #폰으로그리기 #artist #art 2023. 8. 9.
양류관음 230801 33관음중 양류관음 이다. 중생의 간절함에 무한한 자비로 손 잡아 주시는분 즉 내가 힘들 때 힘 내라 어께 토닥이는 분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어 닮으려 노력한다. 그것이 수행 아닐까 싶다 2023. 8. 1.
금강장보살 완성 금강장보살 까지 그리니 십지보살은 다 그린것 같다 이젠 33관음에 도전해볼까 고민된다. 내 성격 내가 아는지라 빠지면 끝을 봐야 한다는 딜레마 2023. 7. 24.
금강장보살 금강장보살 金剛藏菩薩 금강계보살 가운데 상수보살로, 현겁 16대 보살 중 한 명이다. 산스크리트로는 바즈라가르바(Vajra-Garbha)이며, 금강태보살(金剛胎菩薩)이라고도 한다. 밀교의 금강계 만다라 미세회·공양회 등에서 모시는 73존 중 하나이며, 위치는 외원방단(外院方壇)의 북방(오른쪽) 4존 중 제3위에 해당한다. 밀호는 지교금강(持敎金剛)·입험금강(立驗金剛)이며, 종자(種子)는 바(Va), 삼매야형은 4개의 독고저(獨股杵) 로 우물정자(井)를 이룬 모양이다. 여기서 종자는 단음절문자로 존상의 본질을 집약한 상징이고, 삼매야는 특색있는 기물로 부처나 보살의 존격을 상징한다. 몸은 청백색이다. 왼손은 주먹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청련화를 쥐고 그 위에 독고저를 올려놓고 있다. 대부분의 대승경전에 나오.. 2023. 7. 23.
미륵보살 미륵보살 석가모니불의 뒤를이어 57억년후에 세상에 출현하며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 현제는 윤회의 마지막 일생을 도솔천에서 설법하고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미륵의뜻은 자비 우정이며 16수행인의 한사람으로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고 불교에 귀의하는 비구로 묘사된다. 역할은 석가모니로부터 미래에 성불할것이라는 예언을 받으며 대승경전의 발달후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며 차원높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설법하는 보살로 설정된다. 2023. 7. 19.
제장애보살 제장애보살 제장애보살(除障碍菩薩) = 제개장(除蓋障)보살 온갖 번뇌와 장애를 없애주는 보살. 왼손에 여의당(보주)을 들고 오른손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는 모습도 있다. 하늘의 먹구름을 일순간에 걷어내듯 마음속의 장애가 일시에 소멸되는 경지가 제개장의 경지이다.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보살들은 보통 대승경전에시 비롯된다. 그중 4대보살 또는 8대보살로 구분하는데 아마도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나뉘어 진것이라. 불교는 결코 기복신앙이 아니기에 스스로 보살임을 부처임을 깨달아 세상 구석구석 온 우주법계 구석구석 보살로 부처로 나툴 수 있게 되기를 바람한다. #보살도 #제장애보살 #불교 #폰그림 #폰스케치 #폰으로그리는그림 #갤럭시S22울트라 #GalaxyS22Ultra #취미 #불화 #Buddha 2023. 7. 18.
양류관음 양류관음 양류관음은 33관음중 한 분으로 중생의 병고를 덜어주는 보살이다. 오른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왼손 손바닥을 밖으로 보이게 한채 왼쪽 가슴에 대고 있다. 인도의 바이샬리라는 지역에 역병이 유행했을 당시 병을 제거해달라는 사람들의 소망에 응해서 관음이 나타나, 버드나무 가지와 정수를 손에 들고 병을 없애는 주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따라서 양류관음은 여러종류의 병고를 없애는 것을 서원으로 하고 있다. #보살도 #양류관음 #관세음보살 #폰그림 #폰스케치 #폰으로그리기 #갤럭시S22울트라 #GalaxyS22Ultra #buddha #불화 2023. 7. 15.
세상의 모든 신들은 인간의 편의에 의해 생기고 사라진다. 간절히 필요 할 땐 간절히 신앙하다 그 간절함이 사라지면 신앙도 사라진다.신을 앙망하는것이 신앙 인데 그 신 조차 인간의 편의에 의해 존재하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의 종교 또한 여러사람 밥벌이 도구로 잘 이용되어지고 있다. 믿음을 강매하고 서로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분쟁이 일어나고 그 분쟁을 이용해 세력을 키워나간다. 그곳에서 신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 무참히 난도질 당한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그들에 의해서 이미 나와 같은 모습으로 함께 울고 웃고 힘내라 하는 그분들은 외면 한 채 2023. 7. 8.
하나님이 교회에만 있나? 요즈음 이재명 경기지사를 교회에서 많이 공격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목사님도 칼럼을 쓰면서까지 이재명 경기지사를 비판한다 예배를 폐쇄하라고 한다며 진실을 전달해야 할 목사라는 분이 오해를 오히려 부추긴다. 이 지사는 예배를 폐쇄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배 방법을 바꾸라는 것이다 꼭 교회에 모여서 예배하는 방법이 아닌 감염이 덜 될 수 있도록 신도 간의 접촉이 덜 일어나는 방법으로 예배 방법을 바꾸어 달라는 것이다. ​ 만약에 신도들 간 감염이 일어나면 겁 잡을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을 바꾸어 예배를 해달라는 것을 예배를 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을 한다. 묻고 싶다. 꼭 교회에만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꼭 교회에 가서 예배를 해야 하나님이 들어주는지 만약에 감염이 되면 하나님 탓 자신의 믿음이 부족한 탓.. 2020. 3. 10.
신은 어디에 내 육신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틈만 나면 산을 오른다. 그곳에서 만나는 수많은 생명들을 보면서 도대체 신은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궁금해진다. 뜨거운 아스팔트 길 위에 말라 비뜰어져 죽어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지렁이들 과 산 위 의자에서 잠시 쉬려고 하면 덤비는 수십수백 마리의 모기들 그 성가심에 휘둘러는 손길에 죽어나가는 모기. 애꿎게 자기 갈 길 가다가 내 발끝에 밟혀 죽어가는 개미들 그래도 살자고 본능에 따라 내 몸에서 나온 땀의 소금기에서 염분을 취하는 저 검은 나비까지 도대체 어떤 신이 존재하게 했다는 걸까?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보여주는 종교인들의 일탈을 보면 오히려 그들로 인해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들이 말하고 주장하는 신이니 구원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증명해주고 있지 않나.. 2018. 7. 19.
피안과 차안 흔히들 종교를 가지는 것이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신앙을 종교를 가지고 앙망하는 신으로부터 그들의 세상으로 가는 것이 구원이거나 극락왕생이거나 뭐 그런 식으로 지금보다 나은 세상으로 가는 것을 열망하고 그러기 위해 간절히 원한다. 이생에서는 비록 비천하고 남루하지만 다음 생에서는 구원받아 지금보다 나은 삶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내가 안을 주장하니까 바깥이 생기는 것이라고 내게서 안이라는 주장이 없다면 바깥이라는 개념도 없다. 내가 극락을 주장하니 지옥이 생기고 내가 이 세상을 주장하니 저세상 또한 생기는 것이다. 보살을 주장하니 중생이 생기고 부처를 주장하니 중생이 생긴다. 보살도, 부처도, 중생도 다 허상이다. 마음에서 생겨난 미련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 2018. 5. 7.
불교와 타종교와의 대화 자기 완결성을 믿는 종교 기독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십자가로써 상징하고자 한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이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느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한다. 하느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 예수의 몸으로 이 땅에 왔다. 그는 스스로 올라가 매달린 십자가 위에서의 희생을 통해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한다. 모든 인간은 예수의 희생으로써 속량(贖良)받는 것이다. 구원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의 선물로서 주어진 것이다. 선물은 대가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물이란 조건 없이 주는 것이다. 하느님은 죄지은 인간에게 징벌 대신에 선물을 준다. 하느님은 인간의 죄를 조건 없이 용서하고 예수의 십자가 희생이라는 한 번 뿐인 유일회적 사건을 통해 구원이라.. 2010. 11. 1.
종교간의 대화- 대화의 불가피성 종교인은 물론 종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다종교 사회가 노정하는 종교간의 긴장과 갈등, 알력과 분쟁의 문제를 결코 방치하거나 도외시할 수 없다.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조상 대대로 물려 내린 세계적 유산을 한 줌의 재로 태워버리도록 놓아둘 수는 없는 것이다.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하루에도 수 백 명씩 죽이고 죽어야만 하는 지구촌의 현실은 세계 시민에게 결코 남의 문제일 수 없다. 다원주의는 다종교 사회가 노정하는 문제들을 종교간의 대화로써 대처하고자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여기서 종교간의 대화가 갖는 불가피성과 필연성에 대해 이해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종교간에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분명한 이유는 신앙이 서로 달라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2009.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