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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4

이별과 더불어 산다는 것 산다는 것이 참 우습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살아 있으니 그냥 살아간다. 무언가에 의미를 두고 살아야 하는데 그 의미를 둘 만 한 것들이 하나둘 내 곁을 떠나간다. 그동안 맺어온 소중한 인연들이 차례로 떠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것인데 처음 이별은 내 나이 5살 때의 어머니와의 이별이다. 아버지와 큰 싸움을 하고 나서 내가 기억하기로 아버지와의 다툼 끝에 어머니는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는 잠든 덧이 누워 있는 채로 집으로 돌아와 하얀 꽃상여를 타고 떠나 셌다. 그날 아마 비가 조금씩 왔다. 우리 집은 가난하여 화려한 꽃상여가 아닌 동네에서 함께 사용하는 하얀 꽃상여 가 집 앞에 와서 어머니를 싣고 떠나가셨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고 첫 번째 가슴 아픈 이별이었지만 나는.. 2009. 7. 18.
팔월한가위 아침에 길을 나서 큰형님 댁으로 간다. 오랜만에 만나는 조카들과 형수님 그리고 둘째형님과 조카 그렇게 다들 오랜만에 3형제가 모였다. 우리 집은 딸 둘, 아들 셋이다. 그중 나는 아들 중 막내고 밑으로 여동생이 한명이다. 여동생과 누나는 서울에서 현재 살고 있다. 막내인 여동생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난 반대로 불교다 어릴 적엔 같이 교회를 다녔는데 내가 종교를 바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동생의 아이들이 나를 사탄 대하듯이 한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니. 조카를 밉다고 할 수는 없다. 그나마 그 조카들은 길에서 봐도 아마도 못 알아볼 정도로 몇 번 보질 않았다. 동생의 신랑도 난 길에서 만나면 못 알아 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난 우리 집 누나나 동생들의 결혼에는 참석조차 하질 못했다. 동생.. 2009. 5. 18.
명절 명절이 내일인데 마음들은 오늘부터 설레는 모양이다. 나는 아무른 감정도 일지 않는다. 명절이라는 개념이 그저 귀찮을 뿐이다. 며칠 푹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위안이 될 뿐이다.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그림이나 완성해야지 큰집으로 간다. 어찌되었건 제사는 지내야하니 안 가면 쓸쓸해하실 큰형님이 안타깝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에 더욱 가야 한다. 한 팔로 술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예전에는 미처 하지 못하였다. 재작년 추석인가에 전화를 받고는 어찌나 미안한지 교통만 탓하고 거리만 탓하고 시간만 탓하고 나의 무능만 탓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큰형님은 그저 내가 가서 제사상에 올릴 술을 따라주고 받아줄 수 만 있으면 좋아 하실 것을 괜스레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바보다 미안하고 큰형님께 오늘은.. 2009. 3. 2.
우중풍경 2007년 9월 9일 찾은 고향 마을 큰형님댁 마당과 고향마을입니다. 이날 뵙고 얼마후 큰형님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2008.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