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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21

분별 지금 어디를 보는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앞이라고 주장하면 뒤가 생기고 뒤라고 주장하면 또 앞이 생긴다. 설령 깨달아 부처라고 해도 자신이 부처임을 주장하면 그 또한 가짜. 깨달았다고 해도 거짓말 깨닫지 않았다고 해도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해도 참이고 참이라고 하면 또 거짓이니 안이라고 할 수도 바깥이라고 할 수도 내가 살아있음을 주장하면 또 죽음이 생기니 삶과 죽음 또한 별반 다르지 않더라 어둠과 밝음은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따로 있는지. 하나를 주장하면 또 하나가 생기고 그래서 내 이르기를 그것을 분별이라고 한다. 그 분별이 자꾸 또 다른 망상을 만드니 그대 분별하지 말라 이렇게 분별 할 것도 없는데 없다고 주장하니 또 있음이 생기는 구나. 그래서 옛 스님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라고 하셨구나 2012. 10. 17.
한글 -般若心經(반야심경 ) 한글 반야심경입니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모두가 비었음을 비추어보고 모든 괴로움을 여의었느니라 사리자여 물질이 허공과 다르지 않고 허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아서 물질이 곧 허공이요 허공이 곧 물질이며 감각 지각 의지 계속되는 생각 최후의 인식도 그러하느니라 사리자여 사리자여 사리자여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므로 공함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감각 지각 의지와 계속되는 생각 최후의 인식도 없고 눈귀코혀몸 의지도 없으며 빛과 모양 소리 향기 맛 닿은 법도 없고 눈의 객관과 내지 인식의 객관까지 없으며 무명도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고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 2011. 8. 28.
어디서 왔을까? 나라고 하는 이 몸은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참으로 수많은 사람의 한결같은 의심이었답니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라고 내게 질문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답니다. 나는 조금 전으로부터 왔다고 나 고 죽음((生死)이라는 것은 (生)은 마음이 새집 과 인연이 되어 이사 옴 이고 (死) 내가 가진 마음에 집 육신이 인연을 다해 또 다른 인연의 다른 집을 찾아 떠남이라고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참으로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합니다. 그중 가장 아픈 헤어짐이 바로 죽음으로 헤어짐입니다. 죽음으로 헤어짐은 이생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나 동물 들이나 모두 죽음 앞에서는 안타까워한답니다. 하지만 죽음이 있다는 이야기는 삶, 이 있다는 이야기 도 된답니다. 어디선가 죽음으로 통곡하고 있을 때 산부인과에서는 아.. 2011. 8. 6.
얽히고 설킴(인연) 2006년 2월 21일 버스에 몸을 태우고 서울로 향 한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우리 산하 사이로 하나둘 펼쳐진다. 무심코 지나쳐 버린 수많은 인연들이 그렇게 차창 밖 풍경처럼 스치고 지나 가버린다. 그러다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하듯이 그 중 어떤 인연들은 나의 상처처럼 아프게 함을 느낀다. 이런 저런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왜 그렇게도 많은지. 정말 존재의 순간은 모두가 인연되어져 가는 것이구나 싶다. 인연에 의해 만나고 인연에 의해 소멸되어 지는 것이 바로 연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인간들은 좋은 인연 보다는 나쁜 인연이 더욱 오랜 생채기를 남긴다. 특히 만나기 싫은 사람과의 만남은 사람의 여덟 가지 커다란 고통 중에 한가지라고 까지 하는걸 보면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고.. 2011. 8. 6.
많이 춥다 상당히 춥다. 평소에는 손 시린걸. 모르겠던데 오늘은 손이 시릴 정도로 춥다. 어제 옆 사람이랑 새벽에 물건을 하러 갔는데 왜 그렇게 발이 시린지 발이 시릴 정도로 추운 적이 별로 없는데 어젠 정말 발이 많이 시렸다. 그래도 손엔 장갑이라고 끼고 있어 조금 더 시렸지만 발은 신발 안 인데도 두꺼운 양말 너머로 찬바람이 도는 것처럼 추웠다. 하지만 일을 마친 저녁 그래도 등 따뜻하게 누울 수 있어 행복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누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나는 참 행복하다. 내 주변에 흔히 말하는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들의 삶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점심시간엔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한다는 그 사람을 보면서 저렇게 나이 먹어 뭐하나 싶다. 사람은 물질로만 사는 것이 아닌데 그 사람은.. 2010. 12. 26.
그대 어디에 삶(生)이 있나요 삶은 한 번도 그대를 속인 적 없고 삶은 한 번도 그대와 함께 한 적도 없고 삶은 한 번도 그대를 슬프게 하거나 슬퍼하게 한 적도 없으며 삶은 한 번도 그대에게 그대라고 칭하지 않았는데 그대 어떤 삶을 노래하나요. 그대 어떤 삶을 꿈꾸고 있나요. 삶을 주장함으로써 죽음이 존재하는 것을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삶도 죽음도 다 허상이며 무(無)……. 라고. 팔만 사천 경전을 다 뒤져 읽어보아도 어디 한군데 부처를 찾지 않는데 그대는 아직도 삶을 노래하며 삶을 말하는 구려. 어디 내 앞에 그 삶을 내놓아 보십시오. 그대 어디에 '삶(生)' 이 있는지 2010.11.13 자광 하재석 합장 2010. 11. 13.
가을밤에 갑자기 비가 억수 같이 쏟아져 내렸다. 물론 나는 사무실에 있어서 그 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마음 한편이 짠하게 서러워 졌다. 예전에 서울에서 눈이 펑펑 내리던 밤에 갈 곳이 없어 영등포를 헤매던 기억이 난다. 내가 기거하던 차가운 자치 방은 연탄 한 장을 때지 못해 꽁꽁 얼어 있었지. 그 방에서 한 달 가까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왜 그렇게 세상이 처량했는지……. 갑자기 그 때가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물가에 길게 꼬리를 드리우니까? 갑자기 목안에서 깊은 속울음이 올라온다. 참 서러운 세상……. 발아래로는 은행잎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나 뒹구른다. 노랗게 변해버린 잎사귀처럼 식어가는 마지막 생명을 바람에 실어 이리저리 몸부림친다. 쏴아아 떼구르르…….그렇게 내 발끝을 톡치.. 2010. 11. 12.
집안에 벌집이 있는 줄 몰랐다 내가 매일 사진 작업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자꾸 벌이 날아다녀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벌집이 머리위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충 보이는 벌들이 수십 마리가 벌집을 에워싸고 있었다. 순간 아찔했다. 저 정도 벌이면 사람을 죽일 수 도 있는 벌 아닌가 하고 곧바로 119 신고를 했다. 물론 내가 처리하려다가 그렇게 했다가 실수라도 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그냥 119에 신고를 하고 처리 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119는 불이나 지금 현재 출동해 있는 상황이라고 하며 그 불을 정리하고 나서 곧바로 달려와 주겠다고 했다. 나는 또 나대로 볼 일이 있어 아들에게 맡기고 나 나중에 다시 집에 들어가 보니 세상에 여기저기 벌들이 떨어져 죽어 있었다. 그리고 벌집은 내동댕이쳐 있었다. 처리를.. 2010. 10. 19.
구원을 생각하며 머리가 깨어지는 것처럼 아프다. 어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무심코 상대가 뱉은 말에 내가 너무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그것이 나에게 상처가 되는 줄을 모른다. 그래서 또 한 번 더 상처가 있는 마음에 이번엔 생채기를 더 낸다. 사람들은 언제나 무심코 뱉어버리는 말에 누군가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에서 이야길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려 하질 않는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말이다. 그렇게 무심코 던진 말에 난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죽음을 생각하며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그동안 살아온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구나 싶었다. 아니 어쩌면 믿었던 만큼 그 배신감이 큰 것인지 모른다. 슬프다. 정작 상처를 준 자신은 모른다. .. 2010. 10. 15.
윤회란 윤회 란 무엇일까. 물론 다 알고 계실 것이다 업장에 따라 육도 윤회하는 것 하지만 나는 그것을 그렇게 말하진 않겠다. 윤회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당신은 언제 살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그리고 언제 죽음을 맞이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윤회. 한다는 것 그것을 나는 꼭 죽음으로 윤회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분명 어제의 나 와 오늘의 나는 틀리다 아까의 나와 지금의 나 또한 틀리다. 그렇게 찰라, 찰라 우리는 윤회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그것을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니 자연히 윤회를 멀고 다른 이야기로 생각하는 것이다 "윤회" 는 지금 당신과 나 모두가 지금도 꾸준히 진행 중 인 현실 인 것을 2010. 5. 31.
간절히 살고 싶을 때 죽고 싶다고 한다. 바람에 창문이 덜컥이며 금방이라도 부서질 덧 세차게 몰아친다. 먼지가 사방에서 몰려든다. 세상이 먼지 속에 잠겨 있는 듯 그렇게 바람 속에 먼지가 일렁인다. 나는 그래도 길을 가야 한다. 내가 가는 길......., 어디인지 모른다. 다만 길을 갈 뿐이다. 그 끝이 분명 죽음인지라 누구나 가야 하는 길인데 다들 가길 꺼려한다. 그리고 두려워한다. 하긴 아무도 다시 돌아 온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한다. 설령 돌아 왔더라도 기억하질 못한다. 죽음의 길을......., 어쩜 사람들은 최고로 살고 싶을 때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이 일 때 무심코 죽겠다고 한다. 아이고 죽겠다......., 라고 한다. 그것은 또 다른 삶의 절규 인지도 모른다. 살고는 싶은데 정말 절망하긴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포기.. 2009. 12. 12.
삶은 고통이다 살면서 한번 쯤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사실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욕심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삶은 고통 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고통의 원인을 알고 나면 결국은 나로 부터 발생 하였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데 가지질 못하면 그것이 고통이 된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만나지 못하니 그것도 고통이 된다. 또 원수진 사람은 만나기 싫은데 원치 않게 만나게 되면 그것도 고통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지지 말고 함께 하자, 약속했지만 결국은 이별해야 하니 이 또한 고통이다.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하니 이 또한 고통이요 인간의 몸은 한시적이라 늙고 병들고 노쇠하니 이 또한 고통.. 2009. 11. 27.
방어산 마애서 2009년 4월 4일 내 고향 군북에 있는 방어산 마애사 다. 사람의 삶이란 것이 참 허무하다 불과 며칠 전 같은 하늘에서 숨쉬고 웃고 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고인이 되어 장례를 치러고 왔다. 사진속 그의 모습은 웃고 있는데 현실 어디에서도 이젠 만날 수 없음이 참 슬퍼 다. 죽음이란 그런 것 아닐까. 더 이상 만날 수 없음을 슬퍼 하는 것, 그것 아닐까....., 2009. 11. 13.
깨달음 며칠 정신없이 지나간다. 무엇 때문인지. 내가 무얼 하는지 아무런 생각도 준비도 없이 그냥 스쳐가는 것처럼 시간들이 흘러간다. 매 시간마다 다 소중한 시간인 것을 나는 그렇게 허비하고 있다 괜스레 신경전으로 때론 머리가 아프고. 이일 저일 갑자기 연말이라고 밀려오는 이런저런 모임들 그렇게 나는 내가 없이 지나가고 있다. 내가 어디에 있을까. 내가 무얼 하고 있을까. 모른다. 나는 모른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상대와 아무것도 모르는 나. 그러니 서로가 힘들다. 모든 것이 이와 같다. 한사람은 알고 한사람은 모른다.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설명하려 하고 아는 사람은 자신의 앎을 설명하려 한다. 그러니 더욱 모른다. 아니 인수가 없다 서로가 상반되니까. 하지.. 2009. 11. 7.
죽은 자의 도시 지난 4월 2일 가까운 사람이 삶을 버리고 떠났다. 삶이란 참 무심하다. 그는 떠났지만 세상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그저 묵묵하게 또 다른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고 봄이 되고 꽃이 필뿐이다. 그리고 4월 4일 그는 바로 사진에서 보이는 저곳에서 한줌의 재로 돌아갔다. 뜨거운 불 길속에 몸을 맡기고도 아무른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산자의 눈물을 머금고 그렇게 타버린 채 사라져 버렸다. 제법무아 다. 마산에 있는 저곳을 찾은 오전 참 많은 사람들이 저곳에서 검은 옷을 입고 한편으로는 울고 한편에서는 웃고 또 한편에서는 갑작스런 이별에 흐느끼고 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면서 아 이곳은 산자들 보다 더 죽은 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산자들의 눈에는 그들은 그저 조용히 누워 있지만 그곳은 그들만의 세상.. 2009.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