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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183

태풍속에 든다 태풍이 온다고 한다. 아침에 천둥번개가 치며 무섭게 비가 쏟아진다. 제법 올 것이라고 고는 하였지만 이렇게 까지 올 줄은 몰랐다. 비가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쏟아지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물론 상대적일 것이다. 나 스스로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집으로 가는 길에 차를 몰다 보면 내 스스로의 다짐이 무너진다. 법규라는 것이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지키고 있으면 바보다 된다. 그럴 때 마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나를 통제하기가 힘들어 진다. 그렇게 폭발하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된다. 참는다, 잠시 몇 초만 참으면 된다. 그럴 때 마다 내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오지랖 넓게 참견해야 옳은지 아님 참은 것.. 2009. 8. 30.
오늘도 오늘 하루도 해가 진다. 하지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는다. 마찬가지 나 또한 내일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일은 오지 않는다.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며 올 수도 없다. 그렇게 잠이 들어 눈을 뜨면 나는 언제나 오늘에 와 있다. 내일이 아닌 오늘 바로 지금 현재에 숨 쉬고 화내고 밥 먹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현재 조차 내가 느끼지 못하면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린다. 현재의 나를 깨달은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있다. 현재의 나를 알아차림 한 사람은 바로 깨달은 사람이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 여기서 자신을 알아차림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온전히 깨달은 것이다. 죽음도 삶도 슬픔도 행복도 아픔도 나에겐 언제나 현재에 .. 2009. 8. 30.
누구나 가는 길 사람들은 누구나 가야 할 길이 있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그 길 바로 죽음이다. 요 근래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죽음이 많이 들려온다. 먼저 나의 큰 형님이다.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었고 내 일이라면 누구보다. 아파하던 큰형님이 불과 얼마 전이 세상을 떠났다. 나의 어린 시절 철없이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내 나이 5살 아무것도 몰랐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인줄 그저 떡 달라고 울기만 할뿐 그렇게 하얀 꽃상여가 떠나 간 것처럼 철없는 내 조카 둘만 덩그마니 남겨놓고 떠나갔다.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두 손 가지런히 잠자듯 계시는 그 모습에 눈물이 울컥 올라왔지만 참았다. 삶이란 그렇게 빈손으로 왔다가. 옷 한 벌 얻어 입는 것이라 했던가. 엊그제 전화가 걸려 왔다 강원도에 계시.. 2009. 8. 30.
하루종일 하루종일 컴퓨터와 씨름을 한다. 약속한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항상 되돌아서서면 후회 할 약속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 또 내 몸을 혹사 시키는 구나 남들은 돈 받고 해도 쉬엄쉬엄 하는데 나는 웬걸 오지랖이 넒은 건지 남의일 에 걱정이 되어서 내가 나서고 만다. 머리는 지끈 지끈 아프고 소스들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머리는 자꾸 아프지만 일단 틀은 잡는다. 그리고 내일로 미룬다. 내일도 취재 하려 다니려면 바쁜데 그래도 내일로 미룬다. 힘들고 손에도 통증이 온다. 일어나 허리 한번 쭉 일으키고 다시 의자에 않아 또 몰두 한다. 그것이 나의 어리석게 사는 모습이다. 나는 참 바보다. 2009. 8. 30.
나이를 먹는다 김해에 있는 노인종합 복지관에 문종규 김해전수관장의 공연이 있다고 해서 다니려 왔다.많은 공연이 있었다. 김해 노인복지관은 생각보다 훨씬큰 규모의 복지관인데 참 많은 어르신들이 공연을 보며 또 취미생활을 하며 식사를 하며 즐거워 하고 있었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저 어르신들과 같아 질텐데 하니 조금 슬프다. 나이를 먹는다는것은 어쩜 돌이킬수 없는것일진데 그것을 슬프할 일도 필요도 없을텐데 조금은 어린이같으신 어르신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은 슬픔을 느낀다. 나의 노후를 나는 그렇게 꿈꾸어 왔다. 산천이 좋은곳에서.. 부부가 손을 잡고 배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자고 세상의 욕심다 놓고 오손도손 이야기 하며 그렇게 살다가 가고싶다. 지금도 도시의 생활에 아무른 욕심도 없다. 내것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무엇에 미련을.. 2009. 7. 13.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요즈음은 많은 꿈을 꾼다. 내가 세상의 소금이 되고자 했던 그런 꿈들을 이룰수 있는 아니 어쩜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꿈을꾼다. 나로 인해 세상이 좀더 맑아지고 더 나은세상으로 향해가는꿈을 그렇게 가리라.. 점점더 나은곳으로 향해가리라 나의 작은 바램으로 무엇이 그리 바쁜지 모르지만 하루를 무척 바쁘게 산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나를더 힘이 나게 한다. 2009. 7. 13.
좌절도 하지만 요즈음의 나는 도통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을정도로 바쁘다. 이렇게 홈에 들려 글한줄 남기려 해도 그마져 시간이 없다.. 컴퓨터에 있는 시간은 분명 많은데 내홈을 돌아볼 시간이 없는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여기를 텅텅 비워둔다 내가 좋아하는일이지만 조금은 힘이 든다 돈이 되는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어떤 역활을 할수 있음이 즐거워 하는 일이기에 더욱 힘이 들때가 많다. 때론 좌절도 하고 때론 내가 이일을 왜하는지 참 황당할때도 있지만 결국은 카메라를 메고 나가는 나를 보면 어떤 사명감이 아닐까 싶다 아직 이일로 해서 어떤 경제적인 혜택을 보진 못했다. 소속 기자들에게도 어떤 혜택을 주지도 못했다 주고싶다..그들이 안심하고 취재만 할수 있도록 뒷받침이 되고 싶다. 그런데 나의 능력으로는 한계를 느낀다. 경제.. 2009. 7. 13.
거북선 한강에서 본영 통영으로 오던날 거북선이 720km의 뱃길을 달려 통영 강구항에 들어 오던날 수많은 통영사람들..감격에 겨워했다. 그런데 불행이도 한할아버지는 쓰러지셨는데 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분이 신문에 보니까 돌아가셨단다 가슴이 짠하다..그냥119 안불렸냐고 물어만 보고 지나쳐 왔으니..말이다 그런 경사스러운자리에. 그런 불행한일이 함께 공존하다니 슬프다..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이명박시장과.진의장시장은 어떤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움직였지만 시민들은 거북선이 와서 좋은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고도의 계산된 연출에 의해 거북선은 한강에서 통영까지 뱃길을 달려 한산대첩의 본영 이순신장군의 제2의 고향인 통영의 품에 안겨있다.. 그감격의 순간에 동참한것에 가슴이 뿌듯하다.. 2009. 7. 13.
나도 나이를 먹나보다 저녁이면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마음이 스산하다 벌써 가을이 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와 내가 입은 옷들이 더욱 두꺼워 진다. 그렇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월을 오고감을 반복하고 벌써 내머리엔 하얀서리가 내리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너 많이 늙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덜컹 내려 앉는다. 내가 벌써 늙었다는 소리를 듣다니.. 가슴을 쓸어 안고 지는 낙엽을 보며 예전처럼 애뜻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이제야 알것 같다 그렇구나..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10대 그꿈많을때 나는 너무 배가 고팠고 20대 무엇이라도 할수 있을것 같을때 난 마냥 세상을 비관함 했지 30대 언제 아이 아빠가 되어 꿈도 희망도 읽어버린채 살고 있었지 40대 불혹 이라고 했지..이제 조금 철이드나 보다 세상을 이야기 하고 세상속에.. 2009. 7. 13.
바른 언론으로 서리라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요즈음 바쁘게 사다. 이것 저것 그야말로 돈안되는 일로 바쁘다 하지만 보람은 있다.내가 이사회의 어두운 구석에서 무언가를 할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 가끔은 몸이 피곤해 일어나기 힘들만큼 어려울때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은 가볍다. 보람이란것이 바로 이런것이구나 싶다. 여기저기 가는곳도 많고 참견하는것도 많아 진다 언론이라는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바른 언론을 표방하면서.바르게 정론의 길을 가고싶다 나의 작은 힘이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 될수 있고 빽이 될수 있다면 나는 조금 힘이 들어도 기꺼이 가리라 다리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경제적인 부족함을 새삼느낀다.하지만 부족한 나이기에. 앞으로도 쭈욱.나아가리라 2009. 7. 13.
도청에 가서 보니 오후 도청으로 비가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 공보실로 갔다. 반갑게 맞이해 준다 기자출입등록을 하고 도 프레스 센타 로 가보니 가관이다. 하긴 그들은 그동안 줄창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을테니 어쩜 너무나 당연한지 모르겠다. 참 어색하고 무안했다.어찌되었건 인사를 하니 나름의 까다로운 규칙들이 있었다 공보실에서는 보도자료를 인터넷으로 올려둔다고 한다.문제는 센타네.책상이며 기자회등록 문제였다. 도청기자회에 등록이 되어야.자신들이 사용하는 보도증을 준다는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언론이 언론의 자유를 막고 있다. 어찌되었건 그런식으로 경찰청이며 도의회에 들려 인사를 하였다 경찰청도 출입통고는 하였다 도의회에도 출입에 제한은 주지 않는다 한다. 어찌 되었건.인사는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관할경찰서에 들려 서장께 인사를.. 2009. 7. 13.
팔월 한가위 오늘이 더도말고 덜도 말고 팔월한가위만 같아라고 하는 추석명절이다. 거리엔 문을 내린 가계들이 차라리 썰렁하다 버스를 타고 오는동안 거리는 오히려 텅비어 있는덧하다. 추석명절 그얼마나 가슴이 설레이던 날이였던가.. 시골역에서 서울로 돈벌려간 누나를 기다리며 얼마나가슴 설레였던가 아버지가 새옷이라고 한벌 사줄라 치면 추석전날 그옷을 머리맡에 놓고 잠이루지 못하며 새옷을 입기를 열망했던가.. 그런데 지금은 그런것이 사라져 버렸다. 평소에 매일 입는 옷들이 추석에 따로 새옷을 살필요가 없을만큼 풍족해 졌고. 명절이라고 따로이 어떤 특별한 음식을 해먹어야 할만큼 먹을것이 부족하지가 않다. 그래서 인지 요즈음은 그저 명절날은 일가친적이나 형제 자매가 한번 모이는 날쯤으로 인식되어 진다. 제사를 지내고 가족들이 모.. 2009. 7. 13.
찰라에 나는 머리가 많이 아프다. 요즈음의 나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방황하는 나를 보면 나도 아직은 모르는 모양이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딘지 조차 아직 모르지만 분명 한 것은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름을 안다. 내 태어나기전 어디에서 왔는지 내 가야할 그곳이 어딘지 난 다만 모를뿐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잠이드는 일상 그렇게 보내 버린 무수한 순간 순간들이 바로 나의윤회 인 것을 따로이 윤회를 알려고 하는 어리석은나 이제 바람한점에도 난 찰라에 내가 살고 내가 죽음을 알기에 이순간이 너무나 소중할뿐 내가 숨쉬고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모든 것들이 꿈인 것을 나는 그 꿈을 부여 안고 사실인양 아파했다 하지만 어느땐 그꿈에서 조차 깨어나고 싶지 않고 .. 2009. 7. 13.
아저씨 일상을 보내고 벌써 잠자리에 들시간이다. 내나이 벌써 사십하고도 조금더 지났는데. 마음은 아무것도 변한게 없다. 허리가 아파지고 뱃살도 제법 나오고 머리에 이슬도 내려 누가봐도 아저씨.. 얼굴도 거뭇 거뭇 윤기를 읽어 가고 조금은 최면도 사라지는 나는 아저씨.. 어쩔수 없는 아저씨 인가 보다 2009. 7. 13.
도시의 밤 어둠이 내린도시는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화려한 네온싸인 여기저기 켜지면 도시는 또다른 삶이 시작된다. 흥청거리는 음악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 사람들.... 나는 그안에서 자꾸 어둠뒤로 숨어려 한다. 어께 부딪힐듯 밀려오는 인파에 나는 자꾸만 움추려 든다. 도시는 검은 어둠속에 묻혀들지만 현란한 조명은 더욱 요동을 친다. 술에 취하고 삶에 취하는지 흐느적이덧 울리는 이름모를 가수의 노래소리에 나의 어께는 더욱 처져만 간다. 2009.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