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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이야기/삶, 그리고....?115

천둥 치든 날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천둥번개가 친다. 꽈르르 꽝. 우르릉 하는 소리 그리곤 잠시 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좌아악……. 좌아악……. 나는 그 비를 보면서 글을 쓴다. 사심이 잠겨 있고 싶다. 생각 안으로 파고 들어가 그렇게 지난 시간들을 후비고 다닌다. 아픔처럼 가슴이 겹겹이 남아 있는 찌꺼기들을 하나하나 제거한다. 참 기쁨보다는 아픔이 많았던 시간들인 것 같다 웃음보다는 슬픔이 많았고 행복보다는 불행하다고 생각한 시간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이젠 다 보내 버리련다. 저 빗방울 방울 마다 온갖 중생들의 아픔을 씻기고 있는 것 같다 아 그래서 비가 오는구나. 슬픈 사람의 눈물을 감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가슴이 남아 있는 모든 아픔들을 씻기기 위하여 아 그래서 비가 오는구나. 그렇게.. 2009. 2. 12.
악동 들 2009년 2월 5일 방안에서 nikon D200 테스트 사진 2009. 2. 6.
주남저수지 에서 만난 맹금류 가창오리를 사냥해 먹고 있는 참매. 말똥가리 물고기를 사냥한 흰꼬리수리. 사냥감을 노려보는 새매 사냥감을 잡은 매. 쥐를사냥한 황조롱이 주남저수지는 매년 수만 마리의 겨울철새들이 찾아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철새도래지로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찾아온 청둥오리, 쇠오리, 고방오리, 가창오리, 큰기러기, 쇠기러기 등 많은 종의 철새들이 월동하는 주남저수지에 새를 잡아먹는 다양한 맹금류들이 찾아와 먹이 사냥을 하고 있어 탐조객의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맹금류(猛禽類)는 육식성 조류를 말하며 매목과 올빼미목으로 나눠진다. 맹금류는 시각과 청각이 매우 뛰어나고 예민하며 행동이 민첩하다. 부리는 짧지만 날카로워 육식을 하기에 알맞게 발달하였고 먹이사냥에 날카로운 발톱은 새들에게 치명적인 공격 무기다. 매 과와 .. 2009. 2. 6.
딩굴이 이놈이 나와 인연을 맺은지도 10 여일 정도 되어 간다. 처음 왔을 땐 하루 왠 종일 그냥 뒹굴거리기만 하기에 다찌라는 이름을 때고 그냥 딩굴이라고 불러 주게 되었다. 그리고 이놈은 암놈이다. 순수 진돗개라는 데 사실인 것 같다. 하여간 이놈의 특기는 꾀병이며 엄살이다. 하여간 왠 엄살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는 옆집 사람들이 보면 아마도 개를 아주 심하게 구박하는지 알까 걱정 될 정도다. 자는 모습이 참 편안하지만 처음 이놈 때문에 겪은 황당함은 말로 하기 힘들 정도다. 배변훈련을 시키기 위해 거실이 아닌 바깥에 내어 놓았는데 이넘이 가만있다가 문만 열면 나죽어라 비명을 지르며 울어 대는 바람에 결국 다시 거실로 들여야 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덧 태평스럽게 또 까불기 시작하는것이다. 눈에는 쌍거풀까지.. 2009. 1. 16.
2009 년 새해입니다 2008년 나쁜일은 다 버리시고 2009년 좋은일 들만 가득하시길 2009. 1. 2.
사무실 안 사소한 것들 늘 보는 내 사무실 안의 사소한 것들이다. 내가 존재하는 공간안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들의 사소한 것들이다 2008. 12. 25.
사랑한다. 너의 미소가 나에겐 행복이 된다. 너의 울음은 나에겐 아픔이 된다. 너의 웃고 울음은 나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있는 것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고 간절히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2008. 12. 25.
은하수 연말이라고 창원시에서 시민들을 위해 거리에 은하수를 선물 하였다. 이 사진은 전 년도 행사 사진이다. 보도자료를 통해 받은 사진인데 너무 좋아 올린다. 아마도 은하수가 따로 없지 않을까 싶다. 그 아래 사람들의 표정도 참 좋고. 구경거리가 생겨 나도 좋다. 올해는 한번 담아 보리라.. 영상으로 2008. 12. 20.
김장훈, 서해안 해결될때 까지 계속할 것 가수 백지영 가수 김장훈이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의 선행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어떠한 표현보다 행동하고 있는 진정한 천사다... 그가 이번에 서산 태안에서 쓰려져 하지 못했던 공연을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2008. 12. 7.
삶이 가끔 고달파도 삶이 가끔은 고달파도 그 고달픔 자체가 나의 삶이라면 나는 그 고달픔도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 들이겠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고달픔과 친해 지겠다. 삶이란 때론 기쁘고 때론 슬프기 때문이다. 안 과 밖이라는 구분으로 인해 고달픔도 발생 함이니 나는 자라리 고달픔과 함께 웃겠다. 그래도 견디기 힘이 들면 때론 나의 모든것들 다 신에게 맡겨 버린채 나는 잠시 쉴 수 있는 여유를 부리겠다. 그 신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면 그 신도 결코 나의 고달픔을 외면하진 않을 테니까? 나는 신에게 그 모든 나의 고달픔들을 맡겨 보리고 잠시 여행을 다녀 오겠다... 2008.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