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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我)/빛 바랜 일기

봄은 봄인 모양이다

by 자광 2009. 11. 7.
길에 나가니 푹푹 찐다. 아직 분명 여름은 아닐 텐데 이미 여름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까운 곳에 사진을 찍으려 간다. 너무나 담고 싶은 풍경은 많은데 내 실력이 되질 않는다.


봄의 대명사인 벚꽃은 이미 꽃이 눈처럼 진다. 벌써…….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가슴이 설렌다. 아직 소년처럼 그런 감성이 남아있는 건지.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도 나와 같은 설렘을 느끼지 않을까? 예전 같으면 무작정 길을 나서곤 했는데 요즈음은 그렇지를 못하고 항상 한 번 더 생각한다. 그것이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다.


가고 싶으면 길을 나서곤 했는데 요즈음은 가고 싶어도 가질 못한다. 마음뿐이고 삶에 매달려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저 뱅뱅 맴을 돈다. 그것을 사람들은 삶이라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일터로 나가 일을 하고 그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또 일어나 일을 하고 그렇게 나이를 먹고 병들고 죽는다. 나는 그것이 참 서글픈데 눈물이 나도록 서글픈데. 나만 그런가.…….


때론 삶이란 것이 참으로 무심하다.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그냥 살고 있다. 무엇에 인가에 흥미를 느껴보려 해도 그 또한 시들해진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낸다. 나이는 이미 화살보다 빠르게 달려가고 머리엔 흰머리가 휘끈 거리고 몸은 예전 같지 않게 자꾸 나약해지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것이 삶이다.


하지만 어딘가 낯선 곳에서의 느낌은 새롭다. 그 낮선 산천의 느낌은 하늘도 바람도 구름도 모든 것에서 설렘을 느낀다. 어둠 내린 거리도 또 비에 젖은 가로수도 모든 것이 낯설다는 느낌 때문에 가슴에 바람이 분다. 쏴한 바람이……. 그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또 다른 그리움이 자리 잡는다. 아련함으로……. 봄은 봄인 모양이다. 여기저기 연두색 새순이 고개를 내민다.
(지난 2009/04/11 18:27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