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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59

깨달으신분 존재하는 모든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신분 인연에 의해 생겨나고 인연 다함 흩어지는 것 그 뿐 임을 자각 하신분 그것을 알지못해 더 더 더 하는 우리 2022. 4. 19.
신은 어디에 내 육신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틈만 나면 산을 오른다. 그곳에서 만나는 수많은 생명들을 보면서 도대체 신은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궁금해진다. 뜨거운 아스팔트 길 위에 말라 비뜰어져 죽어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지렁이들 과 산 위 의자에서 잠시 쉬려고 하면 덤비는 수십수백 마리의 모기들 그 성가심에 휘둘러는 손길에 죽어나가는 모기. 애꿎게 자기 갈 길 가다가 내 발끝에 밟혀 죽어가는 개미들 그래도 살자고 본능에 따라 내 몸에서 나온 땀의 소금기에서 염분을 취하는 저 검은 나비까지 도대체 어떤 신이 존재하게 했다는 걸까?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보여주는 종교인들의 일탈을 보면 오히려 그들로 인해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들이 말하고 주장하는 신이니 구원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증명해주고 있지 않나.. 2018. 7. 19.
피안과 차안 흔히들 종교를 가지는 것이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신앙을 종교를 가지고 앙망하는 신으로부터 그들의 세상으로 가는 것이 구원이거나 극락왕생이거나 뭐 그런 식으로 지금보다 나은 세상으로 가는 것을 열망하고 그러기 위해 간절히 원한다. 이생에서는 비록 비천하고 남루하지만 다음 생에서는 구원받아 지금보다 나은 삶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내가 안을 주장하니까 바깥이 생기는 것이라고 내게서 안이라는 주장이 없다면 바깥이라는 개념도 없다. 내가 극락을 주장하니 지옥이 생기고 내가 이 세상을 주장하니 저세상 또한 생기는 것이다. 보살을 주장하니 중생이 생기고 부처를 주장하니 중생이 생긴다. 보살도, 부처도, 중생도 다 허상이다. 마음에서 생겨난 미련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 2018. 5. 7.
무심으로 가는 길 중생도 중생이 아니요 보살이 보살이 아니다 부처도 부처가 아닌 그곳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내던져야 하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내던져야 닿을 수 있더라 너도 없고 나도 없고 부처도 중생도 없는 그곳엔 빈 마음 뿐이더라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에 어 시원 다. 2018. 5. 5.
넌 누구 난 어디 내가 있는 지금 여기가 행복하면 극락이요 내가 사는 지금 여기가 괴롭기만 하다면 지옥이다. 극락과 지옥을 따로 어디에서 구하는가 내 사는 이곳이고 내 사는 여기에 苦 와 행복이 더불어 함께 있는데 2016. 8. 31.
관세음보살2 관세음보살 2004년 1월 4일 그린 그림 2016. 8. 29.
처음 법을 설하다 부처님은 진리의 발견자 이지 진리의 창조자가 아니다. 진리는 부처님의 오고감에 상관없이 어디에나 있고 존재한다. 내가 알고있는 진리는 존재하는 모든것은 사라진다. 그것이 진리다. 2016. 8. 25.
먹장구름 먹장구름 이 마치 심술 처럼 도시 의 하늘 을 덮고있다. 마음 안에 쏴한 바람 이 분다. 참 정신 없이 살다보니 어느세 이만큼 와 있다. 희한도 밀려오고 지난간 세월 들이 이 때를 기다린것 처럼 #머리속 으로 밀려든다. 떨쳐보려고 머리를 흔들어도 어림없다.. 오히려 구석 구석 처박혀 있던 더 오래된 것들이 튀어나온다. 내가 지금 무얼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과거 의 내가 나인지 지금 머리 아파 끙끙이는 이놈이 나인지 먹장구름처럼 머리속도 얼키고 설키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먹장구름 사이 사이 간간이 햇살 이 드나든다. 검게 보이던 나무도 빌딩 도 그 때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색을 보여준다. 지금 내 머리속 생각들도 햇살 이 들면 원래 의 모습 으로 돌아 올까.....? 2015.12.19 2016. 6. 20.
행복하다 숨 쉴 수 있어 말 할 수 있어 들을 수 있어 걸을 수 있어 행복 하다. 이렇게 살아있어 느낄 수 있어 만질 수 있어 웃을 수 있어 이 가을 에 빠질 수 있어 행복하다. 생각 을 나눌 수 있고 느낌 을 나눌 수 있고 아파 할 줄 알고 슬프 할 줄 알고 또 기뻐 할 줄 알기에 행복하다.. 주어진 현실에 행복해 하고 만족 해 하는 내가 참 행복하다. 2016.1.3작성 2016. 6. 20.
생각하나 일어나 어제 밤 생각 하나가 일어 한숨 도 자지를 못했습니다. 그동안 내 안 어디에 그 많은 생각들이 숨어 있었는지 밤새 잠 들 시간 을 주질않고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뜬 눈으로 아침 을 맞이 하게 하더군요. 이미 지나버린 과거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에 대한 막연한 상념 들과 밤새 허우적이다.. 새벽 여명 에 내가 잠들지 못했음을 몰려오는 무거운 피로감 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디에도 실체 가 없는 생각의 장난질에 헛 웃음 짓고 맙니다. 요즈음 들어 한번씩 그렇게 잠들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가능하면 머리속 을 비우고 싶은데 한번씩 숨어있던 생각이 꼬리에 꼬리 를 물고 일어나 친구 하자며 매달립니다.. 어제밤 잠들지 못 한 아쉬움 오늘은 잠들겠지요 2016. 6. 20.
구원이 필요하십니까 구원이 필요하십니까. 구원 을 드리겠습니다. 오직 믿기만 하십시요 당신 의 간절한 믿음 만큼 당신은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독실한 크리스찬 인 친구 가 내 친구 중 한명을 교회 로 인도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로 인도하고 싶다는 친구는 부처님 께 귀의한 불자 다. 교회로 인도하겠다는 친구가 바로 구원문제를 내민것이다. 즉 니가 믿는 부처님은 구원을 해주질 않는다고 그러자 친구가 그건 니가 걱정안해도 된다고 하지만 친구는 하나님 많이 우리의 죄 를 사해주고 우리의 영혼 을 구원 할 수 있으니 자신따라 교회로 가자는 주장 이다. 내가 슬쩍 끼여들어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야 니가 믿는 신 은 친구가 죽어야만 구원 해주겠지만 나는 그냥 내가 지은죄 내가 갚아 나가며 철처히 반성 하며 .. 2016. 6. 20.
(5). 종교간의 대화에 임하는 기본 요건 다종교 사회는 필연적으로 종교간의 갈등과 알력을 낳는다.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종교의 본질적 속성 때문에 종교간의 갈등과 알력은 해소되기 어렵다. 그러나 종교간의 대화는 불가피하고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진정한 종교인은 자신의 신앙에 성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대화의 절대적 전제 조건은 정직한 자기 개방이다. 불교는 정직한 자기 개방에 적극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불교는 종교간의 대화에 임하는 데에 기독교와 달리 별로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현실의 불교가 종교간의 대화에서 실제로 적극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현실에 소극적인 불자들 자신의 태도 탓도 있으려니와 대화 상대에 대한 신뢰의 상실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이제 논의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여기서 종교간의 대화에 임하는 기본.. 2012. 3. 21.
상대적 한계를 고백하는 종교 불교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성격을 대체로 네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눈 귀 코 혀 피부의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이 각각 그 상대인 색깔 소리 냄새 맛 사물을 감지하는 인식으로서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둘째는 의식이라는 여섯 번째 감각 기관이 이 다섯 가지의 감각적 인식들을 통합하여 모든 존재들에 내재하는 원리를 인식하는 제6식(第六識)이다. 셋째는 제7식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모든 사물과 사물의 원리를 자기 중심적으로 보는 성격을 갖는다. 넷째는 제8식이라고 하는데 이는 과거의 행위에 영향을 받아서 인식하거나, 현재의 행위가 미래에 영향을 끼치도록 현재의 행위의 결과를 간직하여 미래로 전달해주는 씨앗과 같은 역할을 하는 성격을 갖는다. 우리는 인식 과정의 성격을 파악하는 이러한 불교의 입장에서 역.. 2012. 3. 21.
변화한다(윤회)한다 인간 군상들은 참 이기적이다. 세상 모든 기준을 인간들의 편리에 의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른 종의 생리나 불편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아주 지독한 이기주의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구원이라는 맹목 하에 인간 외 또 다른 존재를 기꺼이 만들고 그 존재에 신이라거나 구세주 등등의 이름으로 형상화 하여 자신들의 믿음 혹은 구원의 대상으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신" 때문에 심지어 전쟁도 서슴치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종교 혹은 신앙이라며 경외 시 한다. 하지만 세상은 어떤 절대자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그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 있기 때문인데 이 조건이 바로 인연(因緣)인 것이다. 어떤 조건에 의해 생겨난 모든 것은 조건이 다하면 변화하.. 2012. 1. 24.
고정적 실체를 부정하는 종교 당신은 지금 이 블로그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여기에 적힌 글(문자)을 언제 어디서나 문자 일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불교는 실체적 존재로서의 문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글이란 존재는 사용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글으로 존재한다. 즉, 문자로 이루어진 블로그에 담긴 내용을 "읽고자"하는 사람이 있을 때만 글이 존재한다. 그 문자를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림이다. 그 문자 위에 색깔을 입히면 그것은 색깔있는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글이란 그 글을 보는 사람의 이해도에 따라 글이 아닐 수도 있다. 블로그에 문자로 이루어진 그 무언가가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에 의해서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 글자 자체가 언제나 스스로 의미.. 2011.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