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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붓다/비교종교

(5). 종교간의 대화에 임하는 기본 요건

by 자광 2012. 3. 21.

다종교 사회는 필연적으로 종교간의 갈등과 알력을 낳는다.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종교의 본질적 속성 때문에 종교간의 갈등과 알력은 해소되기 어렵다.
그러나 종교간의 대화는 불가피하고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진정한 종교인은 자신의 신앙에 성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대화의 절대적 전제 조건은 정직한 자기 개방이다.

불교는 정직한 자기 개방에 적극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불교는 종교간의 대화에 임하는 데에 기독교와 달리 별로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현실의 불교가 종교간의 대화에서 실제로 적극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현실에 소극적인 불자들 자신의 태도 탓도 있으려니와
대화 상대에 대한 신뢰의 상실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이제 논의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여기서 종교간의 대화에 임하는
기본적인 요건을 몇 가지로 간추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자기 신앙에 대한 철저한 확신이 필요하다.
대화의 당사자는 해당 종교 전통 안에서 인정을 받는 대표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신앙이 없는 비신자가 종교간의 대화 상대로 나서는 것은 대화의 본질을 흐려놓을 우려가 크다.
둘째, 그와 동시에 철저한 개방 정신이 필요하다.
종교간의 대화에 정직하게 임하는 사람은 필요하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버리고 개종을 결단할 수 있을 만큼 열려 있어야 한다.
셋째, 대화의 목적을 자신의 변혁과 쇄신, 즉 배움에 두어야 한다.
상대를 설득하여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갖는다면 대화를 기만하는 것이다.
그런 목적이라면 차라리 정직하게 개종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낫다.
잠재적 자기 부정이 없다면 정직한 대화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넷째, 상대의 신앙을 공감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드라마 한 편도 공감적 이해 없이는 온전한 감상이 불가능하다.
공감적 이해 없이 타종교의 이해는 전혀 불가능하다.
다섯째, 진리 추구에 끝까지 성실해야 한다.
대화의 궁극적 목적은 공유할 수 있는 진리의 추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손쉬운 절충주의나 방관주의는 궁극적 목적의 포기를 의미한다.
자신이나 상대를 너무 쉽게 인정해서는 안된다.
여섯째, 교리적인 간격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교육 문화 복지 인권 정의 평화 환경 등
인류 공통의 이상적 현안들을 위해 다같이 실천에 참여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교리적 간격은 동일한 목적의 실천 안에서 무기력하게 와해될 수 있다.
일곱째, 대화에 임하는 당사자간의 인간적인 신뢰와 유대감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신앙을 포함한 모든 인간적 요소들은 인격 안에 융해(融解)되어 있다.
대화 상대의 인격에 대한 감동은 모든 관계를 긍정적으로 이끈다.
다종교 사회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다.
다종교 사회를 기회로 삼을 것이냐 위기로 만들 것이냐는 순전히 종교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
만일 이것을 기회로 삼는다면 그것은 종교인들만의 기회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온 세상의 정치적, 경제적, 민족적, 국가적 반목 세력들에게 화해와 일치,
공존과 공영의 모범이 될 것이다.
불자들의 손에 그 기회가 주어져 있다.

 자광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