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성격을 대체로 네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눈 귀 코 혀 피부의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이 각각 그 상대인 색깔 소리 냄새 맛 사물을 감지하는
인식으로서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둘째는 의식이라는 여섯 번째 감각 기관이 이 다섯 가지의 감각적 인식들을 통합하여
모든 존재들에 내재하는 원리를 인식하는 제6식(第六識)이다.
셋째는 제7식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모든 사물과 사물의 원리를 자기 중심적으로 보는 성격을 갖는다.
넷째는 제8식이라고 하는데 이는 과거의 행위에 영향을 받아서 인식하거나,
현재의 행위가 미래에 영향을 끼치도록 현재의 행위의 결과를 간직하여 미래로 전달해주는
씨앗과 같은 역할을 하는 성격을 갖는다.
우리는 인식 과정의 성격을 파악하는 이러한 불교의 입장에서 역시 불교의 자기 개방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은 분명 사물을 자기 중심적으로 인식한다.
반병이 담긴 술병을 앞에 놓고 "이제 반병밖에 안 남았구나"와 "아직 반병이나 남았구나"로
전혀 다른 인식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모든 인간이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은 인간 자신의 상대적인 한계를 역설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인간은 반드시 과거의 영향을 받아 성립하며
미래의 인간은 현재의 영향을 받아 성립한다는 사실 역시 인간의 상대적 한계를 고백하는 것이다.
불교는 인간 존재가 이러한 이상 인간의 종교 역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불교는 어떠한 계시도 그것의 절대성을 믿지 않는다. 계시 역시 구체적이며 상대적인 역사적 환경의 산물이라고 본다.
불교는 모든 종교가 각자 특수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성립한 자기 자신의 역사적 한계 속에 놓여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입장을 우리는 흔히 역사적 상대주의라고 부른다. 불교는 자신의 역사적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또 한 번 불교가 철저한 자기 개방성을 갖고 있으며,
그로부터 종교간의 대화에 정직하고 진지하게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자광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