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종교를 강을 건널 때의 여러 가지 수단 중의 하나쯤으로 여긴다.
배는 강을 건너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다.
강을 가로질러 건너편 언덕에 가 닿는 수단은 여러 가지다.
강은 배를 타고 건널 수도 있지만, 뗏목을 타고 건널 수도 있고,
다리를 놓아 건널 수도 있고, 비행기를 타고 건널 수도 있고, 헤엄을 쳐서 건널 수도 있다.
밧줄을 타고 건널 수도 있고, 심지어 강 밑으로 굴을 뚫어서 건널 수도 있다.
불교는 이들 여러 가지 수단 중의 어느 하나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언뜻 생각하면 비행기로 건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강 하나 건너는 데에 비행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과도한 방법일 수 있다.
다리로 건너는 것은 안전할지 모르지만 무미건조하게 여겨질 수 있다.
모험가는 뗏목을 타고 건너려 할 것이고 수영 선수는 헤엄쳐서 건너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익사할 위험이 따른다.
땅밑의 터널은 한꺼번에 많은 사람과 화물을 건너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야가 좁고 무너질 위험이 있다.
어느 하나도 절대적인 방법이거나 완전한 방법일 수는 없다.
각 방법마다 장점과 단점이 다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어느 하나만의 방법을 이용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어느 하나만의 방법에 집착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는 사람이다.
만일 뗏목을 목적으로 알고 끝까지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뗏목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뗏목은 강을 건너는 편리한 방법, 즉 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종교를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의사가 처방전을 쓰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붓다는 종종 자신을 의사로 비유했다. 의사는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병에 따라 처방을 내린다.
감기 환자에게는 감기 약이 필요하고 심장병 환자에게는 심장 약이 필요하다.
한 가지 약으로 모든 병을 다 고칠 수는 없다. 모든 병에 한결같이 통하는
만병 통치약이란 헛된 관념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
종교는 병을 고치는 약이다. 괴로움이라는 병을 고치고 행복이라는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 약이다.
만일 자신의 종교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이가 있다면 그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병은 사람마다 다르다. 불교는 하나의 처방전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처방전만 있어서는 안된다고 여긴다.
불교라는 처방전도 수많은 처방전 중의 하나라고 여긴다.
불교는 이런 점에서 자기 개방성, 즉 자기 초월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불교는 타종교를 향해 정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할 열린 자세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