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사는 의령군 부림면 묵방리 49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무심코 들어설 골짜기를 약 3.5Km 나 들어가면 그 끝에 주차장이 나타나고 유학사 들어가는 다리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림같이 나뭇가지 사이로 유학사가 보인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다리를 건너 조금 비탈진 길을 카메라를 메고 끙끙 오르자 정말 해탈로 가는 것처럼 아련한 돌계단이 나타난다. 그 돌계단을 하나 둘 오르자 여기저기 감이 떨어져 홍시가 되어 가고 있다. 벌써 가을 속에 든 것이 실감난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다리를 건너 조금 비탈진 길을 카메라를 메고 끙끙 오르자 정말 해탈로 가는 것처럼 아련한 돌계단이 나타난다. 그 돌계단을 하나 둘 오르자 여기저기 감이 떨어져 홍시가 되어 가고 있다. 벌써 가을 속에 든 것이 실감난다.
세월은 다 흘러가고 유학사도 그렇게 불사의 바람이 스쳐 간 것이다. 다행이 칠성각은 지금의 자리보다 아래에서 위로 옮겨지어 졌는데 그 또한 겨우 200여년의 세월의 흔적만 있단다. 서글프다. 새로움이 옛것을 자꾸 허물어 감이......,
유학사는 약 1300여년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고찰(古刹)로 미타산 기슭에 있다. 원래 미타산의 8부 능선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조선초기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를 지낸 무학대사가 사찰이 앉은 위치가 풍수지리에 맞지 않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에 절을 옮겨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지고 있다.
유학사는 약 1300여년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고찰(古刹)로 미타산 기슭에 있다. 원래 미타산의 8부 능선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조선초기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를 지낸 무학대사가 사찰이 앉은 위치가 풍수지리에 맞지 않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에 절을 옮겨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지고 있다.
무학대사는 풍수지리에 무척 밝았기 때문에 당시 이성계를 도와서 조선개국과 함께 한양에 도읍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일역(一役)을 하였다는 일화는 누구나 다 알고있는 사실이니, 유학사의 전설 또한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닐 것으로 믿어진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부근의 형세가 마치 날아가는 학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고, 예전에 유학사가 있던 자리는 그 학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였다 하니 학의 머리에 절이 앉아서는 아니되고 지금의 위치에 사찰이 있어야만 학이 마치 절을 품고 있는 형상이 되어서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찰의 이름도 학이 절을 품은 채 머무른다는 뜻으로 유학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때가 조선초기 정종 2년(1399년)이라 알려지고 있으며 그 뒤 무학대사는 오랫동안 이 유학사에 머물고 있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 말은 지금에 와서 상고(詳考)할 길이 없고, 다만 그러한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는 사실만 기록할 따름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부근의 형세가 마치 날아가는 학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고, 예전에 유학사가 있던 자리는 그 학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였다 하니 학의 머리에 절이 앉아서는 아니되고 지금의 위치에 사찰이 있어야만 학이 마치 절을 품고 있는 형상이 되어서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찰의 이름도 학이 절을 품은 채 머무른다는 뜻으로 유학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때가 조선초기 정종 2년(1399년)이라 알려지고 있으며 그 뒤 무학대사는 오랫동안 이 유학사에 머물고 있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 말은 지금에 와서 상고(詳考)할 길이 없고, 다만 그러한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는 사실만 기록할 따름이다.
가는 길
대구방면 : 구지 IC → 이방 → 적교 → 부림 묵방
부산·마산방면 : 남해고속도로 함안 IC → 법수 → 정곡 → 부림 묵방
진주방면 : 남해고속도로 의령 군북 IC → 의령 → 국도 20번 이용 → 정곡 → 부림 묵방
버스이용 : 의령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방면 버스로 부림면 여배리에서 하차 도보로 20분
대구방면 : 구지 IC → 이방 → 적교 → 부림 묵방
부산·마산방면 : 남해고속도로 함안 IC → 법수 → 정곡 → 부림 묵방
진주방면 : 남해고속도로 의령 군북 IC → 의령 → 국도 20번 이용 → 정곡 → 부림 묵방
버스이용 : 의령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방면 버스로 부림면 여배리에서 하차 도보로 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