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참 우습고 유치하다.
미치도록 사랑했노라 귀에 속삭이지만 뒤돌아서면 그 또한 다 부질없는 일들이고
사랑한다면서 소유하려고만 하고 또 집착하면서 그것을 진짜 사랑이라고 우기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나는 그것을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모든것은 변한다. 그것이 재행무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결국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일 뿐이다.
그것이 제법무아 다. 어디에 머물러 내가 있는가?
어디에 아픈내가 사랑하던 내가 있는가?
지금 여기에 글을 올리는 내가 나 인가?
그럼 조금 전의 나는 누구이며 또 다가올 나는 누구인가?
지금이라고 우기면 과거고 미래라고 닥치면 지금 이순간이 될 뿐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어디에도 없다.
지금 이순간만 있을 뿐....연두색 잎사귀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순간도 허상 일 뿐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무심할 뿐이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인다고 해서 그 또한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도 실체가 없다.
내가 본다고 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삶에 있어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지금 이순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글을 보는 순간 순간에 자신을 깨달아 그 놈을 본다면
그가 바로 깨달은 이 부처 인 것이다.
순간, 순간, 찰라, 찰라의 나에 충실하다면 그 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면
그가 바로 깨달은이 부처인 것이다.
그가 바로 참 자기이며, 불성이며, 부처인 것이다.
사랑할 땐 사랑하고. 배고플 땐 밥먹고, 졸릴 땐 자야한다.
그 안에 진리가 있는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 즉 모든것은 변한다는 사실 바로 이 사실이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 인 것이다.
세상 모든것은 변한다.
그리고 세상에 자기라고 주장한 말 한 것이
전혀 없다. 나라고 주장하면 그 또한 거짓이 되고 만다.
삶은 어디에 있나. 찰라에 있다.
죽음(死)는 어디에 있나. 그 또한 찰라에 있다.
모든 생사고락이 찰라에서 비롯된다.
그 찰나 를 깨달은이 곧 그를 부처님 이라 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