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참 많은 생명이 살고 있다.
그 많은 생명이 알게 모르게 제 각각의 질서대로
이 세상의 일부분이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 극히 일부분이 바로 인간인데
우리 인간은 마치 자신들이 이 세상의 전부인 냥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규칙에
모든 생명을 종속시키고 그들이 벗어나면 가차 없이 죽여 버린다.
또 인간은 세상에 수많은 이름을 부여하기도 한다.
산, 강, 바다, 하늘, 나무, 숲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그 이름이 다만 인간들의 편의에 의해 부쳐졌을 뿐인데
인간들은 그것을 마치 본래 부터
그런 것인 냥 착각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자꾸 발생한다.
우리가 늑대라고 부르는 동물은 흔히 난폭하고
거칠고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본다.
또 우리가 여우라고 하면 하나같이
간사하고 꾀 많다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한 번도 늑대의 입장에서
또는 여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질 못했다.
아니 할 수도 없다.
늑대도 여우도 우리 인간들의 편의에 의해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늑대라는 동물은 한 번도 자신을 늑대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자신이 난폭하거나 거칠다거나 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여우도 마찬가지 그렇게 자신이 왜 여우라고 불리는지도 모르지만
인간들이 다만 자신을 여우라고 부를 뿐이다.
그리고 그 많은 여우가 다 꾀가 많거나 간사하지 않다.
다들 제각각의 방식으로 살아갈 뿐이다.
늑대의 새끼 사랑을 보면 인간의 자식사랑에 비할 바가 없다.
그런데 왜 늑대는 난폭하다고 할까?
여우 또한 마찬가지 자신들의 새끼를 위해서는
인간에 비할 바 없이 최선을 다 한다.
그런데 왜 여우는 그저 꾀 많고 간사할까?
그것은 바로 인간들의 절대적인 이기주의에서
나온 참으로 인간적인 발상이다.
인간을 만물 의 영장이라고 주장하며
인간 이외의 생명은 함부로 죽이고 심지어 박멸이라는
단어까지 등장 할 수 있는 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름이면 제일 귀찮은 모기의 예를 들어 보자
예전 우리 어릴 때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모기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모기가 싫어하는 연기를 마당에 피워 다만 모기를
멀리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모기를 아주 죽여 버리는 살충제가 등장을 한 것이다.
그 모기는 박멸되어야 하는 대상일 뿐 더 이상의 생명체가 아닌
귀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왜 인간의 입장에서 만 생각을 할까.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그 생명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다.
즉 존재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죽어야 할 생명은 세상에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일 수 있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얼마나 아니러니 한가.
심지어 그 난폭하다 는 육식동물들도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나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약한 동물이 가까이와도 그곳은 평화롭다.
그런데 인간은 다르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욕심에 의해 또 다른 생명을 파괴시킨다.
자연 속에 들어가 보라 어디에 흔적이 남아 있나.
그런데 인간을 거친 것들은 하나같이 냄새가 고약하다.
인간의 입을 거친 음식들이 되돌아 나올 때나
인간이 살고 있는 곳곳에 버려지는 쓰레기들은 하나같이 냄새가 고약하다.
더불어 사랑하며 살순 없을까?
왜 이세상의 주인이 인간이라 생각하는가!
인간들이 파괴하는 자연의 크기만큼 인간들이 받는 고통의 크기도
증가함을 모를까?
늑대는 그냥 늑대로 여우는 그냥 여우로 볼 순 없을까?
왜 그 안에 인간의 기준을 부여해서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을 할까.
한번쯤이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순 없을까?
이세상은 인간이 주인이 아니라 살고 있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주인이다.
그 존재 하는 것들이 다 하나같이 지구라는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져 살고 있는 것이다.
즉 내가 있기 때문에 너 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너를 인정하기 때문에 나 또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되어 살순 없을까.
우리가 바로 이 사회가 이 세상이 이 우주가 될 수는 없을까?
세상의 모든 것은 분별을 떠나 그대로 일 때 아름답다.
그리고 내가 나를 주장하지 않을 때 너와 나는 하나가 될 수 있고
있는 그대로의 산을, 강을, 하늘을 받아들일 수 있다.
더불어 사랑하며 살순 없을까?
나만의 욕심인가.
[이글은 2006년 3월 월간 '환경과 사람' 에 실린 저의 칼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