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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붓다/차나한잔

공덕이 없다(無功德)

by 자광 2009. 10. 28.

[사진 : 우포의 아침]

양나라 무제가 멀리서 온 달마 대사를 금릉에 초대하여 물었다.

"짐은 즉위한 이래 절을 짓고 불상을 만들고 경전을 간행하고 스님을 모신 것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공덕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

무제의 질문은 누구나 물을 수 있는 일반적인 질문이다.
그러나 무제는 자기 기대와 어긋난 달마의 대답을 듣고 몹시 불쾌했다.
그래서 무제는 다시 물었다.

"내 이토록 불법을 위해 온 힘을 다했는데도 아무 공덕이 없단 말입니까?"

"공덕을 자랑하거나,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거나, 칭송과 숭배받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공덕이 될 수 없습니다."

선행을 의식하고 한 선행은 참된 선행이 아니고 공덕을 의식하고 쌓은 공덕은 참공덕이 아님을
간곡히 논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달마 대사의 자비심이 있으며 친절이 있는 것이다.

참된 공덕이라면 달마가 설파했듯이 '무공덕'이어야 한다.
선문에서는 공(功)없는 활동을 '무공용(無功用)'이라 하여 남몰래 선행을 쌓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이를 음덕(陰德)이라고 한다. <장자><소요유(逍遙遊)>에서는 '쓸모 없음의 쓰임새(無用之用)와 '공 없음(無功)'을 설하고 있다. 참된 쓸모는 있음은 세간의 공리적 유용성을 초월하는것이며, 그 초월한 곳 즉 세간의 쓸모 없는 것 속에 참된 유용성이 있다는 것이다(無用之用).

또 세속적인 공덕을 초월한 곳이 참 공덕이 있는 것이다. 장자의 이러한 사상은 선문에서 말하는'무공용'과 서로 통한다.
요컨데 공덕이란 자기가 공덕을 쌓았다는 의식뿐만 아니라 아무 공덕이 없다는 의식마저 비워버리고, 오직 무심으로 공덕과
선행을 쌓는 것이 진정 중요하다. 달마의 참뜻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