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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我)/일상

가을밤에

by 자광 2010. 11. 12.


갑자기 비가 억수 같이 쏟아져 내렸다.
물론 나는 사무실에 있어서 그 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마음 한편이 짠하게 서러워 졌다.
예전에 서울에서 눈이 펑펑 내리던 밤에 갈 곳이 없어
영등포를 헤매던 기억이 난다.

내가 기거하던 차가운 자치 방은 연탄 한 장을 때지 못해 꽁꽁 얼어 있었지.
그 방에서 한 달 가까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왜 그렇게 세상이 처량했는지…….
갑자기 그 때가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물가에 길게 꼬리를 드리우니까?
갑자기 목안에서 깊은 속울음이 올라온다.

참 서러운 세상…….


발아래로는 은행잎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나 뒹구른다.
노랗게 변해버린 잎사귀처럼 식어가는 마지막 생명을
바람에 실어 이리저리 몸부림친다.
쏴아아 떼구르르…….그렇게 내 발끝을 톡치고 지나간다.

참 서러운 세상…….


그 때 저 멀리 구원처럼 빨간 십자가가.
나에게 믿음을 요구 한다. 나를 믿는 자 곧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 때 믿었다. 나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고 갈망했다.
그런데도  내 어린 날의 세상은 시커멓게 서럽기만 했다.
빨간 구원 보다는 현실적인 서러움이 더 커다랗다 나를 짓눌렀지.

죽겠다고 생각 하고 먹은 수면제 50알에 취해
깨어난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 왜 그렇게 추웠는지
이불안 까지도 꽁꽁 얼어 붙어버린 서러움이
차가운 바람이 되어 가슴을 후벼들었지.

그보다 더한 서러움은
그 3일 동안 아무도 찾지 않았다는 사실에
어쩜 그것이 차라리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