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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붓다/교리

싯다리타의 정각

by 자광 2011. 7. 20.
붓다의 정각 내용을 가장 초기에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자료는 붓다의 첫 설법인 초전법률(初轉法輪)에 참석했던 5명의 비구들 가운데
한 사람인 아설시(阿說示 A vasit)와 뒷날 붓다의 상수(上首)제자가 된 사리불(舍利弗) 사이에
있었던 대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리불은 그 당시, 왕사성 근방에서 산자야(San jaya)를 스승으로 모시고 친구 목건련과 함께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왕사성 거리에 탁발 나온 아설시 비구를 만났다.
그는 아설시에게 "그대는 누구이며, 스승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진리리[법(法)]을 배웠습니까?"
라고 물었다.

아설시 비구는 "나는 나이가 어리고 집을 떠난 지도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치를
잘 설명할 수 없으니 이제 간략히 요점만 말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붓다로 부터 받았던 가르침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것은 짤막한 한 수의 게송(偈頌)이었는데. 연기법(緣起法)에 대한 내용이었다.

모든것은 원인에서 생긴다. 부처님은 그 원인을 설하셨다
모든것은 원인을 따라 소멸한다
.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사리불과 아설시의 이 만남과, "나는 나이가 어리고 집을 떠난 지도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치를 잘 설명할 수 없다" 고 한 아설시의 고백에서, 붓다의 정각(正覺)과 그의 첫 설법,
그리고 사리불과 아설시 의 만남 등, 이 3가지 사건이 짧은 기간내에
일어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붓다가 깨달은 것은 곧 녹야원에서 아설시에게 가르쳤고,
그것을 배운 아설시는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리불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이 게송에서 붓다의 정각 내용이 군더더기 없이 설명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리불은 아설시로부터 이 가르침을 듣고 곧 친구 목건련(目建連)과 함께 스승 산자야를
떠나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다른 몇몇 경전에서는 붓다가 깨달은 법이 다름 아닌 연기법이라는 것을 더욱 간단하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잡아함의 (연기법경 緣起法經)에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여래(如來)가 세상에 나오거나 세상에 나오지 않거나 법계(法界)에 항상 머물러 있다.
나(여래)는 이 법을 스스로 깨달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었고, 모든 중생들을 위해
분별해 연설하고 드러내 보였다. 이말에서 "나는 이 법[(法)=연기법]을 스스로 깨달았다"
붓다 자신이 "깨달은 법" 이 연기법이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역시 "연기(緣起)를 보면 법(法)을 보고, 법을 보면 연기를 본다" 라든지 "법을 보면 나(붓다)를 보고,
나를 보면 법을 본다
. 라고 연기법이 붓다 자신이 깨달은 법이라는 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잡아함(雜阿含)의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은 이 연기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

여기에서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가"와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발생을, 그리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다" 와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 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소멸을 설명한다.
모든 존재는 그것을 성립시키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만이, 그리고 상호관계에 의해서만이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우연히 존재하거나 아무런 원인이나 조건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반대로 존재는 그것을 성립시킨 원인과 조건이 없어질 때 역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연기법이란 한마디로 "관계성의 법칙"이다.
이것은 모든 존재의 보편적 법칙이고, 그 이법(理法)이다.



2011.7.3 自光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