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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붓다/허튼소리

나를 찾는것이 깨달음이다.

by 자광 2009. 1. 21.

하늘에 구름이 잔뜩 있어 근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기분이다. 며칠 학당 정리 한다고 정신없이 내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 가버린다. 그래서 그렇게 모르고 지나 가버리는 나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오늘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참선이 생각이 났다. 과연 참선을 통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참선은 힘들다는데 하고 말이다. 우리는 참선을 어렵게 생각한다. 아니 접근 해보지도 않고 어렵다고 한다. 선에서는 불립문자 즉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간화선이다. 간화선은 화두를 든다. 화두란 글자 그대로 말 머리다.

하지만 난 여기서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내  수준에 맞추어 이야기 하려 한다. 참선은 지금 나를 알아차림 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찾는 것이다. 지금의 내 몸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지금 의 나를 존재 시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깨어 있는 것이다.

즉 좌선을 하고 화두에도. 삼매에 빠짐도 지금 이순간의 자기 자신이 정확하게 알아차림 하여야 한다. 과거의 나나 미래의 나는 아직 생각 안이다. 주어진 현실은 언제나 지금이다. 현재 있다. 그러니까 참선은 부처를 철저히 죽이는 작업이다. 그렇게 지금 자신의 본성을 찾아 가는 것이 참선이다.

부처를 죽이라 함은 세상에 따로 부처가 없는데 어디에 바깥에 부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만나는 부처는 과감히 죽여야 한다. 오직 지금 내가 숨 쉬고 깨어 있음으로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우주와 이미 하나이다. 내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어야만 한다. 세상에는 모든 것이 자신이 있을 곳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즉 지금 내가 사용하는 컴퓨터가 다른 곳에 있다면 나는 지금 이글을 올리지 못한다. 그러니까 컴퓨터는 지금 이렇게 내 앞에 있음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참선은 그렇게 제각각의 자리에 모든 것을 바로 두는 작업이다.

산은 산으로 그대로 두고 물은 물로 그대로 두면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 한다. 그것이 전도몽상이다. 마음 바깥에 있는 부처를 찾으려 내안에 있는 불성을 내 팽겨 친다. 지금 내 눈 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 제자리에 두어라 그리고 보이는 대로 보아라. 그것이 참선이다.

나를 그대로의 나로 찾을 때 만나는 그놈이 바로 깨달음이다. 그러면 극락도 해탈도 열반도 다 비어 텅 비었음을 알게 된다. 만약에 열반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해탈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남아 있음이다. 그러니 무엇을 열반이라 하느냐, 아직도 깨달을 것이 남아 있느냐. 참선이 어렵다 한다.

그것은 참선을 어렵게 보는 시각이 어렵기 때문이다. 참선은 바로 예전부터 있기도 했고 예전부터 원래 없는
나를 찾아 지금  깨어 있게 하는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이 따로 둘이냐…….

자 대답해 보라.
둘이라고 해도 한방
아니라고 해도 한방

그럼 일단 마음이 둘인지 그렇게 묻는 이의 마음을 내게 가져 오면 내 대답해 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