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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붓다/허튼소리

내 안의 기준

by 자광 2009. 1. 28.

대한불교조계종 신광사 특강에서
제가한 강의 중 일부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나 세상을 대할 때
흔히 어떤 비교에 의한 평가를 합니다.
즉 내안에 어떤 기준을 정해
그 기준에 의해 사람을 분별하거나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것이 바로 어떤 고정된 관념에 의한 것이라면
그 고정관념을 깨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물 컵을 예를 들면
물 컵은 물을 담는 그릇 이라고 하지만
물 컵은 물 컵이라는 어떤 고정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 컵에 때론 술도 따르고
담배도 털고 밥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가 물 컵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물 컵은 다만 이름이 물 컵 일뿐인데도
우리는 그 기준을 그렇게 세워 버립니다.

즉 고정된 관념으로 자리를 잡게 되지요
그 예로 새 변기를 사다가.
과일을 담아 주며 한쪽에는
조금 지저분한 접시에 과일을 담아 주면
이 또한 접시의 과일을 먹게 될 것입니다.
왜냐 변기를 더럽다는 고정된 관념 때문이지요.
분명 새 변기이고 더러운 접시보다
깨끗한데도 말입니다.
그것은 변기를 변기라는
실체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내안의 기준으로
이미 변기는 더럽다는 판단이 서있기 때문이지요.
변기에 과일을 담으면 과일그릇이요
물 컵에 담배를 털어 재떨이라는 것을
자신의 고정된 관념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 몽상된 삶 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흔히 누구누구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기준 또한. 어떤 기준에 의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사람이
나에겐 나쁜 사람일수도 있는데도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 일뿐인데
그것을 고정된 기준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에 좋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좋다는 기준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이지요.
가령 어떤 사람이 자식의 병원비를 위해
도둑질을 하였다고 하면
그 사람은 자식을 위한 도둑질이기
때문에 자식을 위해서는 희생하고
노력하는 좋은 사람이지만
사회적은 관념으로 볼 땐 그는 범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니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기준 또한
다만 고정 관념 일뿐이고
내안의 기준에 의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여러분에게 하늘을 보라 하면
무심코 머리를 위로 들것입니다.
하늘이 위에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늘은 바로
우리 코 아래 무릎 아래도 존재를 하지요.

그 기준이 인간으로 볼 때.
자신들의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려 할 테지만
개미나 기타 어떤 중생들의 기준으로 볼 때
 하늘이 또 다르지요.
그것이 바로 고정 관념 인 것입니다.
이 고정관념을 깰 때 비로소
산이 산으로 보일 것이고
물이 물로 보일 것입니다.

그 고정관념을 가진 우리 내 중생들이 볼 때
좋은 산 높은 산, 가파른 산, 바위산 등등의
비교 분별된 산들 만이 보일뿐이지요.
산은 다만 산일뿐인데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기준으로 즉 고착된 고정관념으로
그 산을 비교 분별하여 봅니다.

그리고 그 산을 영원한 존재로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기준 나의 생각 나의 고정된 관념이
바로 나라고 착각하는 것이랍니다.
나라는 존재조차도 지금은 남자, 여자 아빠 엄마라는
고정된 관념으로 자신의 존재를 기준으로 삼고 살고 있답니다.

하지만 나도 나라고 할 만한 기준이 사실은 없답니다.
나의 머리가 나일 수 없고 나의 다리가 나일 수 없고
나의 팔이 나일 수 없고. 머리에서 발끝 까지
어디에도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답니다.
나라고 지금 주장하는 나는 사실
나의 고정된 관념이 주는 기준에 의해
나를 주장할 뿐 영원히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지금 당장 발가락 끝의 조그마한 아픔조차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해 보십시오.
내안의 기준을 세우지 않을 때.
고정된 관념을 주장하지 않을 때
바로 무심으로 드는 것입니다.
즉 분별 망상 없는 무심으로요.
늘 좋은날 되십시오.
비가 많이 온답니다.

2005.4.27
維摩 河在錫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