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모든것을 분별하며 산다.
어떤 분이 내게 묻기를."법사님
기도는 어디에 가서 하면
좋습니까," 하기에 내가 대답한다.
자신이 있는 지금 그곳에서 하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다시 묻는다.
"그럼 언제 하는 것이 좋습니까,"
내가 대답한다. 언제라도 하라고.
따로 어떤 시간을 정해 놓고 부처님이 기도를 듣지도 않고
따로 어떤 장소에만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그저 내가 있는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요.
우주의 중심이기에. 내가 있는 곳에 부처가 있고
부처가 있는 곳에 내가 있다고 이야기 해준다.
고개를 갸우뚱 한다.
우리는 모든것을 분별하며 산다.
모든 것을 비교에 의해 판단하고 구분한다.
명상은 조용한곳에서만 해야 하고
기도 또한 유명한 기도처에서 해야만 가피력을 입는다는 둥
그런 저런 것들로 분별을 한다.
그냥 이렇게 컴퓨터 앞에 있을 때나. 글을 읽고 길을 걸으며
버스를 타거나 음악을 들으며 화장실이건 극장이건
아무 곳에서든 명상을 할 수도 기도를 할 수는 없을까.?
내가 있는 자리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그자리가 간절한 기도장소며
내가 있는 이곳에서 잠시 호흡을 조정하며 나를 알아차림 할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명상 실이 어디에 있을까.?
내가 아는 부처님은 따로 없다.
두두 물물이 시방삼세 부처 아닌 것이 없는데.
분별하는 마음이 부처와 중생으로 구분할 뿐이다.
부처와 중생. 다 놓아 버려라.
그럼 그대 이미 자신과 부처가 따로 둘이 아님을 느낄 것이다.
자광. 하재석 합장
아하붓다/허튼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