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법 아침이나
저녁에 의 쌀쌀한 느낌이
나를 참 기분 좋게 한다.
그러다 문득 오늘 내가
이렇게 느끼고 보고 듣는
이것은 과연 어디로 부터 시작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내가 세상에 나올 때
내 마음대로 나온 적 없고
내가 갈 때도 또한 내 마음대로 가지 못할 텐데
한 번도 이런 만남에 대해 의심 하거나
궁금해 본적도 없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만남을 생각해본다.
만남에는 여러 경우의 만남이 있으리라
태어남으로 맺어지는
부모 와 의 만남이
그러하고 형제 와 의 만남 과
남자 또는 여자로 의 만남과
이 지역에 의 만남
이 나라에 의 만남 등등
어떤 선택을 하지도
선택 당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이렇게 오고간다.
하지만
그 외에도 우리는 무수한 만남으로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결혼이 그렇고
내 아이가 태어남이 그렇고
또 친구들이 그렇고
이웃이 그렇고
무수한 만남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만남의 소중함을 모른다.
매일 부딪치는
소중한 만남들은 더더욱 모른다.
수백 수천억의 생명들과 의
부딪힘에서 이렇듯
나와 스치는 인연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산다고 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만남을 반복 하지만
그 인연의 소중함은 느끼지 못한다.
태어나 살면서 사랑하고
원수 맺고 한 인연들이
결국에 업 갚음인걸. 모른다.
원수 맺은 인연 들은
나의 업에서도 악업을 사라지게 하는
인연일수도 있다.
그들을 용서해 주고 보듬고 인내하고
오직 자비로써 대한다면
그 악연이 오히려 선업의 씨앗이니
악연도 선연도 다 자기로부터
원인이 지어진다.
이렇게 만남을 받아들이고
원수도 부모도 다 인연인줄로 깨달아
나로부터 가고 옴을
만남의 씨앗도 나로부터 시작됨을
알도록 하자
"만남" 이렇게 무수한 만남으로
세상을 산다.
이왕이면 그 만남을
선업으로 만들 수 있음도 알자
부처님은 일체가 다 무상이라 했듯
우리 만남도 무상인걸.
거울 앞에서 거울 안에 비치는 모습이
바로 너 냐 라고 묻는다면
아니요 하고 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만남은 또 무엇일까,
비친 모습이 내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는 누구며
맞는다고 한다면 그럼 보는
이 나는 누구인가,
만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부처님과의 만남도 업이요
예수님과의 만남도 업일 테니..........
2001년 8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