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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붓다/허튼소리

좋고 나쁨

by 자광 2008. 12. 15.

 좋음에 대하여.
좋다. 참 좋은 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좋음을 추구하며 산다.
그럼 무엇이 좋음 일까?
기분 좋음, 사람 좋은, 품질이 좋음, 등 등 일단 좋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다른 것보다 더 애매한 것이
사람의 기분 좋음이다

같은 비라도 가뭄에 시달려온 농부에게는 좋은 비 일터고
내일 소풍가기로 약속한 아이에게는
참으로 속상하는 비다
그럼 비가 좋은 비일까? 나쁜 비일까?
여기서 대답은 없다 내리는 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단지 그 비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그때 감정에 따라 좋기도
나쁘기도 할뿐이다
소풍가려하던 아이도 비를 기다릴 때가 있을 것이고
농부도 비가 얄미울 때가 있을 것이다
무엇으로 기준을 삼을까.

이러하듯 좋고 나쁨도 순간의 기분이듯
좋은 사람 나쁜 사람도 우리의 판단은
나한테 잘해주면 좋은 사람 나한테 못하면 나쁜 사람이다
우리가 흔히 지탄하는 사회의 소위 범죄인이라는 사람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 사람 그럴 사람이 아닌데 한다.
왜일까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그 아닌 사람이 틀릴까
아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기준이다
우리는 감정적인 추론을 할뿐이다

좋고 나쁨으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소위 나한테 좋으면 옳고
나한테 나쁘면 그름으로 판단하는
이 어리석음 특히 이사회는 집단적 추론을 하기에
지금과 같은 전쟁이 일어난다.
서로의 주장에 위배되고 이념에 맞지 않음으로
적이 되고 규탄하는 대상이 되고 심지어 지금 같은 테러로
또는 그 보복으로 침략을 한다.


여기에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이 개입된다면 혹은
그것을 동물들에게 적용 시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까치를 길조라 한다.
그렇다면 정말 까치가 길조일까
서양에서는 까치는 흉조다
그렇다면 정말 까치가 인간에게 길조이며 흉조일까
어떤 관습이나 사회습관에 따라
까마귀는 인간의 기준에 의해 원하든 원치 않던
흉조가 되고 길조가 된다.
까마귀는 흉조도 길조도 아니다 그냥 까마귀 일뿐이다
그런데도 까마귀는 인간의 기준에 의해 결정되어져버린다.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이러하듯 좋고 나쁨은 인간의 감정에 따라 결정되어진다.
예를 들면 평소에 좋아하든 것도 감정이 안 좋을 때라든가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땐 안 좋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애매한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다 아니 관습화 해버린다
가령 늑대는 포악하고 사납다.
여우는 교활하고 영리하며 비겁하다 돼지는 미련하다
등등 인간의 기준으로 정해버린 기준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좋고 나쁘다 보다 옳고 그러다보다
더 현명하게 사물을 보는 방법이 없을까?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너무나 많이 등장하지만
정작 그것을 알기에는 우리가 너무 무지하다
아니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뒤에 머문다.

바로 이말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라
산은 그냥 산일뿐 물은 그냥 물 일 뿐
여기다 인간의 감정을 개입시키면
아름다운 산 맑은 물이지만
물은 정작 맑지도 탁하지도 않고 물일 뿐이다
산은 아름답지도 그렇지 않음도 아니고
그냥 산일 뿐이다. 그걸 우리는 모른다.
산을 산으로 보지 못하는 이 어두운 눈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결정해버린다
단지 자신의 감정인줄 모르는 착각에서.........
 
2001년10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