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붓다366 겁외사 보살님 2005년 3월 1일 산청 겁외사를 찾았다, 겁외사는 성철스님 생가터에 세운 절이다. 2009. 11. 12. 스승과 제자 어느 마을에 스승과 제자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제자가 평소에 궁금해 하던 것들을 스승께 여쭈어 보았답니다. 제자: 스승님, 사람이 죽은 후에는 지옥이 있고 극락이 있는지요? 스승: 있어도 좋고 없어도 상관없다. 제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스승: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니라. 제자: 아니 스승님,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니요? 스승: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도 있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자: 그렇다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니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나쁜 일은 하지 않아야 되겠군요. 스승: 그렇다. 제자: 그럼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없을 수도 있으니 좋은 일을 할 필요도 없고 .. 2009. 11. 11. 종교간의 대화- 대화의 불가피성 종교인은 물론 종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다종교 사회가 노정하는 종교간의 긴장과 갈등, 알력과 분쟁의 문제를 결코 방치하거나 도외시할 수 없다.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조상 대대로 물려 내린 세계적 유산을 한 줌의 재로 태워버리도록 놓아둘 수는 없는 것이다.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하루에도 수 백 명씩 죽이고 죽어야만 하는 지구촌의 현실은 세계 시민에게 결코 남의 문제일 수 없다. 다원주의는 다종교 사회가 노정하는 문제들을 종교간의 대화로써 대처하고자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여기서 종교간의 대화가 갖는 불가피성과 필연성에 대해 이해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종교간에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분명한 이유는 신앙이 서로 달라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2009. 11. 11. 타종교를 향한 4 가지 태도 다종교 사회가 노정(露呈)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종교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다. 즉, 종교간의 긴장과 갈등은 타종교를 대하는 태도로부터 야기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다종교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타종교를 대하는 우리들 자신의 태도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앞서 종교는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 배타적 헌신을 요구하며, 종교인은 본성상 어느 정도 독선적 제국주의의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타인의 신앙을 대하는 종교인의 태도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좀더 자세히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배타주의 타종교를 대하는 태도는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2009. 11. 10. 자신에게 더 엄하라 옛날에 남에게 아주 엄하게 구는 수행자가 있었다. 이 수행자는 남이 조금만 계율을 어겨도 길길이 날뛰었다. "계율을 철저히 지켜야지! 그렇게 해서는 절대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바보 같은 녀석……." 그런 식으로 매일 혼을 내자 다른 수행자와 신도들은 모두 그 수행자를 무서워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수행자가 어떤 계기로 고기를 먹게 되었다. 그런데 먹어보니 생각 외로 고기가 맛있었다. 이 수행자는 자신이 비록 계율은 어겼지만 고기 맛을 잊을 수가 없어 다음날도 몰래 고기를 먹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 수행자는 이래저래 어긴 계율인데, 한 번 더 어기고 참회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또 계율을 어기게 된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스승이 그를 불러 말했다. "이 녀석아! 너는 너 자신에게는 관대하.. 2009. 11. 8. 시작도 끝도 없더라 시작도 끝도 없기에 나는 아직 시작 하지도 끝내지도 않았다. 언제나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마지막이며 처음이었다. 그렇게 여기에 또 판을 펼친다. 자 신명나게 한판 놀아 보자 꾸나.. 2009. 11. 8. 조급한 성질이 실패를 부른다 소나기는 온종일 오지 않는다. 돌개바람은 한순간을 불고 만다. 발꿈치를 들고 멀리 보려고 하면 오래 서있을수 없다. 빨리 가자고 발걸음을 성큼성큼 내딛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한다. 성급한 마음이란 이와 같다. 서두르면 일의 실마리를 잃는다. 찬물도 쉬엄쉬엄 마셔라 목마르다고 허겁지겁 물을 마시면 사래가 들어 갈증을 풀지 못한다. 이처럼 조바심을 내면 되는일이 없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간다. 느긋하고 차분한사람이 일을 빈틈없이 치러 갈수 있다.느긋해야 생각이 차례를 얻고 차분해야 판단의 잘잘못을 가려 낼수 있느 까닭이다. 깊은 생각이 튼실한 이해를 낳고 튼실한 이해가 틀림없는 판단을 내리게 한다. 고요한 마음에서 새로운 생각이 섬광처럼 번득인다. 아이디어는 고요한 물에 어린 그림자처럼 생각이 선명해야 떠오.. 2009. 11. 8. 의심하지 말라 부처님이 어디에 계실까 염려하거나 의심하지 마라. 시방삼세 가득하신 부처님을 의심하는 그 마음이 바로 너를 중생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다. 저 꽃들은 고집하지 않는다. 나비나 벌이 꽃이 고집한다고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내 고집대로 떼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면 부릴수록 나는 그만큼 어리석어진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세상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세상을 바다. 내 몸을 한척의 배라고 상상해보자 매어둔 배는 바다 위를 돌아다닐 수 가 없다. 배를 꼭 매어 두는 밧줄 같은 것이 고집이고 억지이다. 그런 밧줄은 사람을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만든다. 매이지 않은 배는 물길에 따라 이리저리 항해한다. 바다가 잔잔하면 편하게 배를 젓고 거칠면 힘들게 배를 저으면 된다. 삶의 바다가 .. 2009. 11. 8. 다종교 사회의 필연적 문제 지금 사회 안에 둘 이상의 종교가 각각 분명한 사회적 영향력으로서 존재하는 다종교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장점과 문제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먼저 다종교 사회는 문화적인 은혜와 기회의 현장이다. 지금까지 축적해 온 인류의 문화 유산 가운데서 종교 문화가 차지하는 양은 압도적이다. 종교 문화가 인류의 삶에 갖는 중요함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종교는 인간의 탄생과 삶과 죽음은 물론 그 이전과 이후까지 걸치는 인생관과 세계관을 제시한다. 종교는 인간의 모든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우리가 만일 단일 종교 사회에 산다면 다양한 종교 문화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는 원천적으로 박탈당하고 말 것이다. 반면에 다종교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중요한 인류의 문화 유산을 그만큼 폭넓게.. 2009. 11. 8. 한국과 다종교 사회 요즈음 세계적 정황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이라고 하는 특수 지역만을 한정적으로 살펴보면 다종교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경우 등록된 종교 단체만 해도 수 백여 개에 이르고 종교 공동체임을 표방하고 활동하는 단체들은 수 천여 개가 넘는다고 보고되어 있다. 공신력 있는 가장 최근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의 50.7%가 스스로를 종교인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종교 인구 중에서 불교 신자가 23.2%로 제일 많고, 19.7%의 개신교, 6.6%의 가톨릭이 차례로 그 뒤를 잇는다. 유교 신자의 수가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조사 방법의 한계 때문이다. 종교에는 다른 사회 조직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자신들만의 조직을 가지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제도 종교가 있는 .. 2009. 11. 8. 불교와 다종교사회 현대와 다종교사회 지구촌과 다종교 사회 다종교 사회란 한 사회 안에 둘 이상의 종교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를 말한다. 다만 그러한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어느 하나의 종교가 압도적인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여타의 종교는 있으나마나한 경우라면 다종교 사회로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다종교 사회의 충분 조건은 한 사회 안에 둘 이상의 종교가 각각 분명한 사회적 영향력으로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과거의 전통 사회는 여러 면에서 폐쇄적인 사회였다. 따라서 전통 사회는 그 성격상 여러 종교들을 한꺼번에 수용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전통 사회라고 해서 반드시 하나의 종교만 존재했었던 것은 아니다. 중동이나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사회의 경우 대체로 샤머니즘과 유교 불교 도교가 함께.. 2009. 11. 8. 욕망의 이름이라는 전차 욕망의 이름이란 전차,오래된 영화 제목이다. 현대인의 별명은 그렇게 불러도 된다. 욕망의 전차는 인생이란 궤도에서 과속을 일삼고 난폭운전을 서슴지 않는다. 욕망의 눈,욕망의귀,욕망의코,욕망의 입은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 버린다, 욕망을 탐하면 부자유가 쌓이고 욕망을 버리면 자유가 열린다. 부자유는 몸부림을 치게하고 자유는 노닐게 한다. 욕망이란 돌개 바람처럼 날리다 먼지로 떨어질것인가? 그렇다면 욕망의 전차에서 내리지 마라 그러나 들판의 풀꽃처럼 인생이란 꽃을 피울것인가? 그렇다면 욕망이 들끊는 천차에서 빨리 내릴수록 좋다. 그 전차에서 어떨게 내릴까? 타는것도 나였으므로 내자신이 내려야 한다. 귀와 눈, 코와 입은 모두가 굴레이며, 정욕과 기호는 마음을 병들게 하는 기계이다. 2009. 11. 7. 내가 우주의 주인 인 것을 며칠 정신없이 바쁘다. 바쁜 것이 좋은 것인지는 몰라도 잠시 동안의 우울을 날려 버린다. 그러고 보니 괜찮은 것도 같다. 하릴없는 무력감에 지고 말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내가 지금 웃고 있는걸 보니 아직 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모른다.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자신이 위대한지를 모른다. 이 우주의 주인임을 이 우주의 중심임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좌절하기도 하는가 보다. 난 그동안 그걸 안다고 착각하였던 모양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을 알면서 진정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어깨를 펴고 활짝 일어나야지 내가 좌절하면 나의 우주가 좌절을 하기에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안의 이 우주는 세상에 따로 또 없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이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엔 먹구름만 가득하다. 2009. 11. 7. 잎새는 마지막이 화려하다 목이 많이 아프다. 갑자기 황당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늙어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늙어가면서 어떻게 나이를 먹는 가 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경우든지 참으로 곱게 나이 먹었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성공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다. 한때 어떤 위치에 있었든지 간에 그 사람의 일상은 얼굴에나 행동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더욱 얼굴엔 평안이 찾아 와야 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보통 나는 나이 먹었네 하는 분들을 왕왕 본다. 자신은 나이를 먹었으니 젊은 너희가 그냥 봐주라 아니. 설마 너희들이 나이 먹은 나에게 어떻게 하겠느냐는 식으로 그냥 막 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볼 땐 가슴이 아프다. 그분의 그 행동은 그분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반증해주기 때문이다. 남에게 나이.. 2009. 11. 7. 깨달음 며칠 정신없이 지나간다. 무엇 때문인지. 내가 무얼 하는지 아무런 생각도 준비도 없이 그냥 스쳐가는 것처럼 시간들이 흘러간다. 매 시간마다 다 소중한 시간인 것을 나는 그렇게 허비하고 있다 괜스레 신경전으로 때론 머리가 아프고. 이일 저일 갑자기 연말이라고 밀려오는 이런저런 모임들 그렇게 나는 내가 없이 지나가고 있다. 내가 어디에 있을까. 내가 무얼 하고 있을까. 모른다. 나는 모른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상대와 아무것도 모르는 나. 그러니 서로가 힘들다. 모든 것이 이와 같다. 한사람은 알고 한사람은 모른다.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설명하려 하고 아는 사람은 자신의 앎을 설명하려 한다. 그러니 더욱 모른다. 아니 인수가 없다 서로가 상반되니까. 하지.. 2009. 11. 7.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