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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79

아픈 이놈은 누굴까? 팔이 아프다. 물론 그동안 쭉 아파왔던 팔이지만 오늘은 그 아픔이 더해 결국 한의원을 찾았다. 견딜 만큼 견디어 왔는데 결국은 아픔하나 이기지 못하고 병원 신세를 진다. 침을 맞는다. 순간 손끝으로 짜릿한 전기가 통한다. 신기하다. 인체란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구나 싶다. 내 몸이라면서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육신이다. 마음대로 태어나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 또 마음대로 아프고 나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내 몸이라고 한다. 우습다. 무엇을 내 몸이라고 생각하는지. 어디를 내 것이라 생각하는지 어느 곳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손가락 아니다. 이 또한 잠시 내 것이라고 착각 하는 것일 뿐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다... 2010. 1. 8.
또 하루가 간다 또 하루가 간다.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시간은 흘러 그렇게 간다. 그 시간을 부여잡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어느 순간 2009년이더니 또 그 2009년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은 순간이다. 영원한 것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은 영원할 것처럼 살고 있다. 모든 것이 그 착각에서 출발한다. 분명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이고 변할 것인데도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엄청난 착각 때문에 세상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내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욕심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원하지 않을 존재를 영원하다고 믿고 그 영원하지 않는 나를 위해 이런 저런 욕심들을 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나라고 하는 이 것 중에 나라고 주장할 만 한 것이 없음을 알고 나면 모든 것이다 무상함.. 2009. 11. 25.
헛됨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진심으로 사람들을 도우려 했습니다만, 헛되고 헛될 뿐이었습니다. 제게 어떤 잘못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까닭이라도 있는 것인지요?" 스승은 제자에게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마침내 때가 되었는지, 스승은 뜰 앞 개울가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다리 한가운데에 돈 주머니를 갖다 놓게 하고, 마을로 가서 빚을 잔뜩 진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다. 스승은 그 사람에게 다리를 건너라고 하면서, 그러면 좋은 일이 생길것이라 귀뜸해 주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다리 건너편 쪽으로 가 그가 다리를 건너오기를 기다렸다. 신호와 함께 그 사람이 건너기 시작했다. 그가 건너오자 스승이 물었다. "다리 가운데서 뭘 보지 못했는가?" 그 사람이 대답했다. "아무것도요." .. 2009. 11. 22.
무엇으로 스승을 삼을까? 부처님 무엇을 따라 스승을 구해야 하나이까? 하고 묻는 다면 이렇게 대답하리라. 너 자신을 등불삼고 법(法)을 스승삼아 정진하라.. 부처님은 우리가 혹시 자신을 그저 공경의 대상으로 삼을까 걱정하고 있다. 자신 처럼 깨달아서. 네 자신이 부처임을 깨달아 라고 하신다. 2009. 11. 7.
길없는 길 어떤 사람이 길을 나섰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 그리고 부모님을 다 놓아두고 반드시 깨달음을 얻어 돌아오겠노라 맹세하고 굳은 결심으로 길을 떠났다. 하루, 이틀, 한주, 두주 그렇게 세월은 흘러 일 년 이 년이 지났지만 그 사람이 원하는 그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 했다. 그 와중에 숱한 스승들을 만났다. 어떤 이는 자신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노라 말하고 어떤 이는 자신만이 구원을 해줄 수 있노라 말하고 어떤 이는 자신이 바로 그 구원자 깨달은 자라고 말했지만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바에 미치지 못하므로 그렇게 깨달음을 갈구하며 방황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는 길에서 우연히 남루한 옷차림의 어떤 걸인을 만났다. 그 사람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이 그저 입고 있는 옷만이 전부였다. 뜻하지 않는 동행에.. 2009. 11. 1.
확연무성(廓然無聖) 양나라 무제는 불법을 위해 공덕을 많이 쌓았지만, 달마 대사는 "공덕이 없다(無功德)."고 설파했다. 그러자 무제는 "어떠한 것이 성제제일의(聖諸第一義)입니까?" 라고 질문했다. 이 '성제'의 성(聖)은 성인이나 부처님을 말하며, '제(諸)'는 진리를 말한다. 따라서 '성제'는 부처님이나 성인이 깨달은 진리를 말하지만 일반적인 불도나 불법의 의미로 쓰인다. '제일의'는 더이상 위가 없는 근본적인 뜻이라는 의미가 있다. 요컨대' 성제제일의'는 불법의 극치, 불법의 진수라 할 수 있다. 무제는 불법의 가장 근본적인 뜻이 무엇이냐고 물은 것이다. 달마는 무제의 이 질문에 대해"확연무성"이라고 갈파했다. '확연'은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확 트인 무심의 경지를 형용하는 말이다. '무성'은 무제가"어떠한 것이.. 2009. 10. 29.
세월 난 그동안 세월이 화살 같이 흘러간다. 하여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이 조금 들어 깨달아 보니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월을 그렇게 흘러 보내고 있었다. 또 세월이 덧없이 흘러간다고 세월을 원망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세월을 덧없이 흘러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월은 귓가를 스치는 바람처럼 그렇게 항상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가는 시간에 아무른 대책 없이 탓만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고 머리엔 희끗희끗 서리가 내려지는 것을 세월 탓 을 할 것인가? 세월이 흘러가는 것은 내 마음이 바쁜 것이다. 바쁜 마음으로 인해 조급해 지고 조급한 마음이 세월을 탓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지금에 머물라 말하고 싶다. 지금 여기서 지금 이 .. 2009. 10. 12.
내안에 분노가 일면 내 안에서 분노가 일어난다.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 이미 나는 지옥 안에 든다. 내 마음 안의 불이 빨갛게 타오르기 때문이다. 분노와 친구가 되면 다시 침착한 상태로 돌아오기보다는 점점 더 분노 속으로 빠져든다. 미움이 일고 나를 분노하게 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과 시기, 불쾌함, 잔인한 생각들 또 그 사람에 대한 어떤 무례함과 심술궂음 등 좋은 면보다는 그 사람의 나쁜 점이 점점 부각되어 점점 더 분노 안으로 빠져들게 된다. 분노가 폭발할 듯 정점으로 치달리기만 하지 멈추기가 힘이 든다. 즉 길을 가다가 어떤 장애물에 의해 넘어져 무릎을 다쳤는데 피가 나지만 치료하기보다는 그 장애물을 설치한 사람이 누구며 왜 방치하여 나를 다치게 하였는가에 집착하여 그 상처를 자꾸 덧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분노가 .. 2009. 2. 4.
내가 주인공이 되자 인생은 한편의 연극이라는 말이 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왕이면 그 연극에서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아닌 주인공으로 살자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른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도 또 어디로 가는지를 그런데 분명 한 것은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공평하게 누구나 똑같다. 그런데 그 일평생 동안의 삶을 우리들은 마치 세상의 이방인 인양 방관 하며 산다. 자신이 그 세상의 중심인 것을 망각한 채 말이다 생각해보라 내가 없다면. 이 세상도, 사랑하는 사람도, 부모도 없을 것이다. 내가 있고 사랑도, 부모도, 이웃도, 세상도, 존재 하는 것이다. 냉정히 나 하나 세상을 등진다고 세상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설령 이 지구 가 사라 진다해도 우주는 눈.. 2009. 1. 28.
부처가 따로 있나요 매주 일요일이면 여기저기 기도를 간다고 합니다. 영험한 기도처를 찾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관세음보살의 기도처. 지장보살의 기도처. 아미타불의 기도처. 문수보살의 기도처. 등등. 세상에 참으로 많은 기도처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정말 관세음보살님의 기도처가 따로 있고, 지장보살의 기도처가 따로 있고, 아미타불의 기도처가 따로 있고, 문수보살의 기도처가 따로 있다면. 저는 차라리 그런 부처님 보살님을 놓을 랍니다. 따로 어디에 머물며. 찾아가 기도해야 한다면 힘없고 어렵고 움직일 기력도 없는 분은 관세음보살님께, 지장보살님께, 아미타부처님께, 문수보살님께 기도할 수 없는 건가요. 내가 알고 있는 부처님은 시방삼세 가득하십니다. 아니 따로 어디에 구할 부처도 보살도 없는 줄로 압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관세음보.. 2009. 1. 28.
비는 분명 한 비인데 오늘 하늘엔 먹장구름이 가득합니다. 비가 오려는지 어제까지 내리든 비는 그치고 지금은 하늘가득 검은 구름이 산과들. 바다와 섬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와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하여 세상과 좀 더 가까이 내려오려 하나봅니다. 어제 내린 비가. 좋았던 사람 또는 싫었던 사람 그렇게 느끼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게 내렸을 것입니다. 비는 분명 한 가지 일 텐데 그 비는 그 비를 보고 느끼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게 슬픈 비. 사랑에 찬비 그리움으로 남은 비 아픈 기억이 있는 비 등등. 정말 가지가지의 비가 되어 내린답니다. 어제 어떤 비를 맞으셨나요. 혹시 슬픈 비. 아님 기쁜 비. 저는 쏟아지는 폭우 속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었기에 참으로 행복하답니다.……. 그렇게 내리는 비조차 행복하게만 보였답니다... 2009. 1. 26.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들은 정말 수많은 형태의 사람들을 본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제각각의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 중 나도 있고 너도 있다. 그런데 가끔 나는 그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선 내가 세상에 나올 때 난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남자로 나올지도 알지 못했다. 더 중요한 것은 난 내 삶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살아간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아마도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 산다는 것의 종점은 죽음이다. 하지만 역으로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다. 어떤 종교에서는 죽음을 마지막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기 싫다고 한다. 그리고 죽음하면 어둡고 침울하게 생각한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돌아가셨다. 그 분은 불교신자 이었지만 그 자녀들은 종교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다툼.. 2009. 1. 24.
알아 차림 오늘 하루를 통 털어 몇 번이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생각들을 당겨 하였을까. 우리는 언제나 미래를 이야기 할 때 막연히 한다. 미래가 언제 인가 이글을 쓰고 있는 현재일 뿐 미래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그보다는 미래를 어떤 먼 이야기로 간주한다. 미래가 과연 그런가. 아니다 미래는 지금에서 시작된다. 과거는 끊임없이 지나간다. 하지만 과거는 어디에도 존재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과거를 끓어 안고 산다. 미래에 내가 죽고 미래에 어른이 되고 미래에 나는 좋은 일을 할 것이다. 미래 즉 나중에 하고 말이다. 그 나중이 과연 언제 올까.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나중은 잡히지 않는 결국에는 나중으로 그친다. 우리 나중에 살지 말고 지금에 살.. 2009. 1. 21.
모른답니다 2003년 1월 1일 새해 아침 일어나니 햇살은 예전과 똑같고 다만 나는 변해있구나 어제의 나는 어디에 가고 오늘의 나는 또 누구인가? 거울 속에 웃고 있는 저 모습이 나인가 아님 이렇게 생각하는 이놈이 나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나는 누구란 말인가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럼 모른다고 하는 이 나는 누구인가? 부처는 누구며 조사는 누구인가? 누가 부처고 누가 조사인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인가. 올해는 어디 존재하고 지난해는 또 어디에 있나 다가올 해는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다만 지금여기에 존재 할 뿐. 어디에도 없더라. 과거에도 현재에도 또 미래에도 단지 찰나에 나는 그렇게 현존 할 뿐이더라. 자광합장 2009. 1. 19.
만남 이제 제법 아침이나 저녁에 의 쌀쌀한 느낌이 나를 참 기분 좋게 한다. 그러다 문득 오늘 내가 이렇게 느끼고 보고 듣는 이것은 과연 어디로 부터 시작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내가 세상에 나올 때 내 마음대로 나온 적 없고 내가 갈 때도 또한 내 마음대로 가지 못할 텐데 한 번도 이런 만남에 대해 의심 하거나 궁금해 본적도 없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만남을 생각해본다. 만남에는 여러 경우의 만남이 있으리라 태어남으로 맺어지는 부모 와 의 만남이 그러하고 형제 와 의 만남 과 남자 또는 여자로 의 만남과 이 지역에 의 만남 이 나라에 의 만남 등등 어떤 선택을 하지도 선택 당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이렇게 오고간다. 하지만 그 외에도 우리는 무수한 만남으로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결혼이 그렇고 내 .. 2008. 12. 8.